[뉴욕=뉴스토마토 김하늬 통신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식에 참석하며 외교 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미국 대선 승리 이후 첫 해외 방문으로 트럼프 당선인은 해외 정상들과 잇따라 회동을 가졌습니다. 미 행정부 교체기에 각국이 외교력을 총동원해 관계 쌓기를 시도하고 있는 건데요.
하지만 한국은 내년 1월20일 출범하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응할 골든타임을 놓칠 위기에 처했습니다. 당장 한국의 정상외교가 사실상 '올스톱' 된 상황입니다. 150분 만에 해제된 12·3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정국으로 한국의 정상외교가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이 더는 외교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가수반이 아니어서 당장 모든 정상외교가 멈추고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7일(현지시간) 프랑스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 재개관식 당일 파리의 영국 대사관저에서 윌리엄 영국 왕자를 만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취임 전 '정상' 외교 개시…'방위비·무역' 문제 압박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전 세계 50여 명의 주요 지도자가 모였는데요. 트럼프 당선인은 아직 취임하지 않았지만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했습니다. 그가 대성당 안으로 발을 들였을 때 미리 착석해 있던 각국 정상들은 앞다퉈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는데요. 마크롱 대통령은 레드 카펫을 준비하는 등 현직 대통령에 준하는 의전을 제공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식에서도 트럼프 당선인의 자리를 마크롱 대통령과 부인 브리지트 여사 사이에 마련하는 등 파격 대우를 했습니다. 게다가 트럼프 당선인은 마크롱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3자 회담까지 가졌습니다. 또한 노트르담 재개관 행사 이후엔 영국 윌리엄 왕세자와도 회동했고,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는 비공개 면담을 가졌습니다. 사실상 '국가 정상'으로서의 외교 활동을 펼친 것인데요.
그는 또 여러 분야에서 공격적 정책을 펼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먼저 유럽에 대해 방위비와 무역 불균형 문제를 지적하면서, 러시아 위협에 대응한 안보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미국의 탈퇴를 시사하는 등 초강경 입장을 내놨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은 8일 미 <NBC 방송>과의 첫 인터뷰에서 "나토는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 무역에서 유럽 국가들은 우리를 끔찍하게 이용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자동차와 식료품 등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면서 "그것에 더해 우리가 그들을 방어하고 있다. 그것은 이중고"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만약 그들이 청구서를 지불하고, 그들이 우리를 공정하게 대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당연히 나토에 남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트럼프 당선인의 이러한 언급은 이번 대선 과정에 유럽의 동맹국들을 향해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고 '나토 탈퇴 불사' 위협을 가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끌어내겠다는 공약을 되풀이해 온 것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날 인터뷰에서 한국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서도 유럽 동맹국들을 바라보는 것과 유사한 인식을 여러 차례 내비쳤는데요. 그는 지난 10월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고 부르며 연 100억달러(약 14조원)의 방위비를 요구한 바 있습니다.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 공식 재개관 기념식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했다. (사진=EPA 연합뉴스)
한국 '외교 고립' 불가피…트럼프 2기 대응 '골든타임 실기'
이처럼 한국을 겨냥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거나 '관세 폭탄'을 부과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트럼프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위급 외교는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외교 업무를 한덕수 국무총리가 수행한다 하지만 정상 외교 수행이 어렵습니다. 다자 무대에서야 한 총리가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다 쳐도 그가 '격'에 맞는 정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윤 대통령이 탄핵됐다면 한 총리는 대통령 권한으로서 국가수반 역할을 하겠지만 현재는 윤 대통령이 그 자리에 엄연히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트럼프 당선자 측이 당분간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습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1기 행정부 인수위 측은 "죽은 권력은 상대하지 않는다"며 "다음 정부와 대화하겠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는데요. 죽은 권력과는 대화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는 트럼프 당선인이 식물 정부가 된 한국 정부와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작기 때문입니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과 혼란 상황에도 한·미 양국의 대북 경계 및 억제 등 연합 태세는 여전히 강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일본 방문 일정 동안 한국 방문도 함께 추진 중이었으나 계엄 사태로 취소한 바 있습니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미국에서 일본으로 이동하는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 전용기 내 브리핑에서 "한·미 동맹은 철통같고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양국 국민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사태 및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 무산 등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앞으로 몇 주 동안 추가 조치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며 "미국 정부는 한국의 민주적 제도와 절차가 헌법에 따라 완전하고 적절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계속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뉴욕=김하늬 통신원 hani487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