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탄핵정국이 장기화됨에 따라 행정, 외교 마비에 따른 산업계 부담도 가중될 전망입니다. 각국의 방한일정이 취소되는 등 외교상대국으로서 국격이 손상됐습니다. 노동계는 탄핵 때까지 파업을 불사하고 투쟁한다는 방침입니다. 이미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직면해 있는 기업들에게 손발이 마비될 위험까지 덮쳤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계엄부터 불쾌감 보이는 미국
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는 여당 의원들의 표결 불참에 따른 탄핵 정족수 부족 불성립에 “한국의 민주적 제도와 절차가 헌법에 따라 온전하고 제대로 작동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거듭 내비치고 있습니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1기 당선됐을 때는 역시 탄핵정국에 있던 박근혜정부와의 접촉을 기피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런 정황들을 고려하면 외교 대응부터 무형적, 잠재적 손실·비용이 쌓이는 중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2기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칩스법 보조금 축소, 관세 인상 등 정책 변수에 대한 외교 대응이 일본에 비해 이미 뒤처졌다”며 “탄핵정국이 계속되면서 사실상 식물정부 상황이 길어지면 경제적 피해가 누적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전기전자는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 조치 강화에 따른 비상 현안을 처리해야 합니다. 추후 관세 인상이 본격화되면 부품, 재료값 상승으로 수출 채산성이 악화될 것도 불가피합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미국 내 투자해온 기존 설비의 조기 완공이 필요하지만 트럼프 2기 공약대로 현지 투자혜택이 취소될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외교 도움이 절실하지만 탄핵정국에 여념이 없는 형편입니다.
현대차, 기아 등 자동차 역시 IRA 전기차 보조금 이슈에 묶여 있습니다. 트럼프 2기의 연비규제 축소 또는 폐지 공약은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비중 전환을 가져옵니다. 현대차, 기아 등은 최근 수년간 전기차에 막대한 투자금을 사용했는데 회수기가 지연될 수 있는 리스크입니다.
마찬가지로 삼성, SK, LG 이차전지도 IRA 보조금 폐지와 내연기관차로의 회귀가 이뤄질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이미 전기차 수요 둔화 속 글로벌 배터리 성장세가 약화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잇따른 전기차 화재로 내수조차 힘이 되질 못합니다. 트럼프 2기 내 까다로워질 원산지 규정도 골칫거리입니다. 이또한 외교적 해법이 요구되지만 식물정부 상황이 관련 도움에 대한 기대를 낮춥니다.
수출 항만 부두. 사진=연합뉴스
외교전은 벌써 일본에 졌다
철강은 최근 중국발 저가공세가 포스코, 현대제철 등 제강기업들의 실적 부진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외교적으론 대미수출 쿼터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이 외교 합의를 통해 무관세 등 아무 장애 없이 수출하는 상황과 대조됩니다. 이에 비춰 한국이 탄핵정국에 빠진 사이 경쟁국이 외교적 반사이익을 누릴 상황도 예측 범주에 놓입니다.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석유화학산업은 기업 부채가 부실화되고 자칫 기업집단의 위기로 전이될 위험 속에서 정부의 산업구조조정 도움이 시급합니다. 하지만 관련 방안을 논의할 여력도 부족하고 급한 것부터 처리해야 할 사안도 정부 결재라인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우려가 번집니다.
탄핵 부결에 따른 노조 반발은 이들 기업의 부담을 더합니다. 국내 가장 큰 산별 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은 부결 당일 “금속노조의 발걸음은 민주주의 역사였다”며 투쟁에 나설 방침을 시사했습니다. 오는 10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세부 투쟁 계획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금속노조는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직후 현대차와 기아, 한국GM 등에서 부분파업도 실시했었습니다. 5일부터 이틀간 파업으로 현대차는 4000여대 생산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와 별개로 이미 철도노조파업이 전개되면서 물류차질도 생기고 있습니다. 임금협상, 인력감축 등이 이들 노조의 분쟁 현안이지만 계엄 사태도 불을 질렀습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철도노조 파업은 5일간 이뤄져 화물열차 운행률이 47.4%에 그쳤는데 코레일에서만 23억6000만원가량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탄핵정국으로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서 파업이 길어지거나 발생하면 유무형 손실이 국가경제에 치명적 손상을 남길 것 같다”고 걱정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