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이 이어진 여파로 두산이 추진하던 지배구조 개편이 물거품이 됐습니다.
두산밥캣(241560)과 두산로보틱스 간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한 합병은 무산됐으나, 이로 인해 촉발된 주주 보호 법안 논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 측은 자본시장법 개정에 나섰고 민주당은 상법 개정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034020)와 두산로보틱스는 12일 예정이었던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철회했습니다. 금감원이 합병신고서를 반려하자 두산은 합병 비율을 조정, 지난달 22일 증권신고서 효력이 발생했는데요. 임시주총만 남긴 상황에서 이를 철회함으로써 지난 7월 발표한 두산 지배구조 개편안이 최종적으로 무산된 겁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탄핵 정국에 접어든 가운데 불안정성이 확대되며 주가가 하락했고, 주식매수청구가격과 주가 간 차이가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는 지난 10일 "주가 하락에 따른 상황 변동으로 분할합병 안건의 임시주주총회 특별결의 가결 요건의 충족 여부가 불확실해졌다"며 "당초 예상한 주식매수청구권을 초과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주주님들께 계속 불확실성을 남겨 두는 것보다 빠르게 의사결정을 해서 회사의 방향을 알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6000억원의 주식매수청구권 한도를 설정했지만 10일 종가는 매수 단가인 2만890원을 크게 하회한 1만7180원으로 마감했습니다. 13일은 전일 대비 3.31% 하락한 1만7240원으로 마감했습니다.
지배구조 개편안은 무산됐지만 주주 보호를 위한 법안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은 두산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지난 7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두산밥캣 방지법'을 대표발의한 바 있습니다. 공정한 합병가액 산정 책임 강화와 계열사 간 합병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으로 당시 시장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금융위원회는 지난 11월 비계열사 합병가액 산정규제를 개선했고 이달에는 계열사간 합병에서도 가액 산정기준을 전면 폐지한다는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개정 방향에는 상장법인이 합병 등을 하는 경우 주식가격, 자산가치, 수익가치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정된 공정한 가액으로 결정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두산밥캣 방지법에 담긴 내용이 반영된 겁니다.
야당인 민주당은 자본시장법에 더해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 주주 보호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상법 개정을 당론으로 채택해 상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계획입니다. 상법 제382조의 3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요.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은 해당 법안에서 이사회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전체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다만 재계 등에서는 이를 두고 경영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며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현정 의원은 "민주당은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법 개정 투 트랙으로 가야하며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는 안된다는 입장"이라며 "계엄으로 연기된 (상법 개정 관련) 정책 토론회도 조만간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정부와 야당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시장 자율에 맡기는 안으로 현실에서 작동하기 힘들 것"이라며 "상법과 자본시장법은 상호 보완 관계기 때문에 상법 개정으로 기본적인 규율의 원칙을 정해주고 자본시장법이 불법행위 등 세부적인 것을 정하는 방식으로 같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양준혁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상법 개정으로 가는 방향은 맞지만 섣불리 법을 도입해선 안된다"며 "자본시장법 역시 정치권에선 합의를 했지만 새 정권이 들어서서 안정적일 때 개정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이 지난 8월 뉴스토마토 유튜브 <야단법석>에 출연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