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이후 정권 교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윤석열정부에서 내려온 '낙하산' 인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윤석열 대선 캠프를 비롯해 대통령실 출신 인사 중 금융 경력이 전무한 인사들은 금융공기업과 민간 금융사 곳곳에 포진해있다. 그 중에는 지난 4월 총선 이후 내려온 사람들도 많은데, 임기가 한참 남았음에도 자리보전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9월 취임한 김경환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도시경제학을 전공한 학자 출신이지만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에서 경제정책 자문을 맡으면서 부동산 공약 및 정책을 입안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이순호 한국예탁결제원 사장도 윤석열 대선 캠프 출신이다.
기관장에 2인자 권한을 갖는 상임감사로 눈을 내리면 낙하산은 더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상임감사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지만 정부의 입김이 세고 견제가 느슨한 점을 악용해 현 정부에서도 낙하산 인사가 줄줄이 내려왔다. 수출입은행과 기술보증기금, 예탁결제원 등 상장사가 아니면서 감시망이 덜한 공기업에 수두룩하다.
국책은행장들도 임기를 완주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국내 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국책은행의 수장들은 정권 교체기 첫번째 '물갈이' 대상이다. 임기가 6개월 가량 남은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을 제외하더라도 윤희성 수은 행장도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씨와의 인연이 부각된 바 있다.
공기업들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선임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각 기관 임원추천위원회 추천과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친 후 대통령이나 장관이 임명하는 구조다. 그러나 공기업의 임원추천위원회는 민간 금융사처럼 독립성이 있는 사외이사가 이끄는 게 아니라 기관장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 의중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기관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임할 수 있는 배경에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이 있다. 산은과 수은, 기업은행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되고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5곳은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이다. 공운법에 따르면 준시장형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이사회 의장은 기관장이 된다고 기재돼 있다.
물론 대통령이나 정부와 인연이 있는 전문가라고 해서 무조건 낙하산이라 매도할 수는 없다. 낙하산 인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힘든 만큼 임원 자격 요건을 엄격히 관리해 금융 경력이 전무한 인사를 걸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는 금융사나 공기관 임원 자격 요건으로 전문성 등 적격 요건이 규정돼 있지 않고, 미성년이나 실형·파산 선고 등 결격 사유만 정하고 있다. 자격 요건을 명문화 하는 '낙하산 방지법'은 지난 19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발의와 폐기를 거듭하며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공기업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세금이 투입된 공적기관이다. 임원 선임은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인물로 엄정히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꽃보직'이라는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해 객관적이고 투명한 임명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연말 금융권 낙하산 인사가 잠잠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 분위기가 한철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한다.
금융산업부 이종용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