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금융 시즌2' 끝?…은행권 '정례화' 우려

소상공인 채무조정에 3년간 2.1조 지원
당국, 일회성 안되게 경영실태평가 손질

입력 : 2024-12-23 오후 2:34:49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사들이 상생금융 정례화를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금융당국이 요구하는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 데다 이제는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금융당국은 정례화에 대한 계획이 없다고 설명하지만 은행 경영실태평가에 관련 실적을 반영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연간 6000억~7000억원 조성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은 이날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맞춤형 소상공인 지원 방안을 내놨습니다. 앞서 '상생금융 시즌1'이 이자 환급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에는 채무조정에 집중된 모양새입니다.
 
은행권은 향후 연체 가능성이 있거나 폐업을 앞둔 소상공인의 대출금에 대해 최장 30년까지 장기분할상환할 수 있도록 하고, 신용등급이 떨어지더라도 금리를 더 올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재기 의지가 있는 사업자가 연 6~7%대 저리로 추가 사업자금을 받을 수 있는 '상생 대출'도 출시합니다.
 
금융위원회는 은행권의 연간 지원 규모가 6000억원에서 7000억원 규모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3년간 지원액은 2조1000억원 안팎으로 예상됩니다. 지난해 발표돼 1년간 진행된 소상공인 이자환급(캐시백) 재원 약 2조원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하지만 이는 각 프로그램 신청률을 20~30%로 설정하고 추산한 금액입니다. 소상공인의 신청률이 높아지면 그만큼 은행 부담도 커지게 됩니다. 은행권에선 이런 상생금융이 고금리 시기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정례화' 수순을 밟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이번 소상공인 지원방안이 은행권의 자율적인 의지에 따라 '뜻을 맞춰 시행하는 것'이라며 정례화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국은 은행권 경영실태평가에서 '개인사업자대출119 전체 실적'을 '장기분할상환 대환 실적'으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은행권 공통 모범규준을 개정해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도록 못을 박아둔다는 방침입니다. 
 
어수선한 정국에도 옥죄기 계속
 
은행권이 올해 역대 최대실적을 경신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상생금융 압박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정보분석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 금융지주사의 연간 당기순이익 전망치는 16조9245억원으로 전년 15조1367억원 대비 11.8% 증가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내수 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은행권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 것은 주력 계열사인 시중은행의 이자수익이 크게 늘어난 영향입니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방침에 가산금리를 높게 유지하면서도 수신(예금)금리는 낮춰, 예대마진을 늘렸습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4대 은행의 신규 가계대출 예대금리차는 지난 7월 0.43%포인트에서 10월 1.04%포인트로 2배 이상 뛰었습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조용병 은행연합회장과 20개 사원 은행장들과 함께 개최한 간담회에서 은행권 소상공인 금융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금융위원회)
 
정부와 금융당국이 막대한 이자이익을 거둔다고 비판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압박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일 가산금리 산정 세부내역을 공시하도록 하는 ‘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자율 영역에 맡겨 은행들이 알아서 정하는 가산금리 책정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야당에서 횡재세를 발의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금융사의 순이자이익이 직전 5년 평균의 120%를 넘을 시 초과 금액의 최대 40%까지 기여금으로 징수하는 내용의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올해 22대 총선 전후 횡재세 재추진을 움직임을 보였는데 민주당이 횡재세 법안을 다시 추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은행 부담 지적엔 "건전성에 도움"
 
은행권의 사회공헌 규모는 지금도 작지 않습니다.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의 지난해 연간 당기순이익(21조3000억원) 대비 사회공헌액(1조6000억원) 비중은 7.5%로 전년 6.5% 대비 1.0%포인트 늘었습니다. 2019년 9.2%, 2020년 8.6%, 2021년 6.9% 순으로 낮아지다가 다시 오르고 있습니다. 해외 주요 은행의 순이익 대비 사회공헌액 비중이 1~2% 내외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미 상당한 비용을 사회공헌에 투입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는 은행권의 보통주자본비율(CET1) 등 실제 건전성 지표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CET1은 위험가중자산(RWA)을 보통주 자본으로 나눈 것으로, 금융지주의 손실 흡수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당국은 이를 13% 이상으로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각사도 이를 주주환원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금융지주회사들은 통상 순이익·손실이 1조원 발생할 때마다 CET1은 0.4%포인트가량 변동합니다. 
 
4대 금융의 지난 3분기 말 기준 CET1은 우리금융 11.96%, 신한금융 13.13%, 하나금융 13.17%, KB금융 13.85%입니다. 밸류업 계획에 따른 주주환원 확대라는 당국의 또 다른 목표와도 상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강영수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단기적으로 은행의 비용부담이 발생할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고객이 연체에 빠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채무를 상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은행의 건전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병환(가운데) 금융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권 소상공인 금융지원 방안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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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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