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2024년 한 해 동안 제약 바이오 업계는 대내외 악재로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1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의정 갈등으로 인한 전문의약품 매출 축소, 신약 임상시험 일정 차질, 정부의 R&D 예산 축소, 바이오 투자 위축으로 중소 제약 바이오 기업들이 특히 어려움을 겪었죠. 12.3 계엄 사태 이후 산업 전반에 불안정성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사실상 내란 정국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환율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80원을 돌파했습니다. 원료의약품 수입 의존도가 90%에 육박하는 국내 제약 바이오 업계 특성상 환율 상승은 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앞으로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경영 여건이 녹록치 않을 전망입니다.
다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2건의 국산 신약이 2년만에 탄생했고 사상 최대 글로벌 수주 성과도 있었습니다. 신약 기반의 글로벌 시장 확장은 신성장 동력 확보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주요 제약사의 올해 실적 역시 예상치보다는 선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올해 3분기 상위 10대 제약사의 연결 기준 누적 실적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전년 동기보다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외부적인 악재에도 신약과 주력 제품의 활약에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업계 1위인 유한양행은 국내 제약사 최초로 올해 연 매출 2조원 돌파에 근접했는데요. 유한양행의 3분기 누적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10.5% 오른 1조5717억원, 영업이익은 31.3% 상승한 666억9749만원을 기록했습니다. 유한양행의 실적 상승에는 지난 8월 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의 기술 이전 성과가 크게 기여했습니다. 유한양행은 9월에 글로벌 제약사 얀센 바이오테크(Janssen Biotech)에 기술 수출한 렉라자에 대한 상업화 기술료로 약 804억원(6000만 달러)를 수령했는데요. 이는 유한양행의 2023년 연결기준 매출액의 2.5%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신약을 보유한 기업들의 성장세는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나보타와 펙수클루, 엔블로를 보유하고 있는 대웅제약도 3대 신약 수출 성과에 힘입어 역대 최대 실적 달성이 기대됩니다. 특히 나보타는 글로벌 보툴리눔 톡신 시장에서 견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데요. 나보타의 올해 3분기 기준 누적 매출액은 1377억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대웅제약의 3분기 누적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4.1% 상승한 1조548억원, 영업이익은 16.3% 늘어난 1092억4946만원을 기록했습니다.
올해 상반기까지 역성장으로 고전했던 GC녹십자는 미국에 혈액제제 알리글로를 출시하며 반전을 꾀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73.9% 급감했지만, 7월부터 알리글로의 미국 출하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실적 개선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422억866만원으로 전년도 428억4253만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했습니다. 하반기 GC녹십자의 혈액제제 매출은 1366억원으로 전년보다 50.8% 증가했습니다. 알리글로의 미국 시장 매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면 오는 4분기에는 수익 개선 돌파구를 찾을 전망입니다.
바이오 기업의 해외 수주 성과도 돋보였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제약사와 연이은 빅딜을 체결하며 창립 이래 최초로 연 누적 수주 금액 5조원을 돌파했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만 1조원 규모의 빅딜을 총 세 건을 체결했습니다. 3월에 올해 첫 계약을 시작으로 공시 기준 글로벌 제약사들과 총 11건의 수주 계약을 체결습니다. 특히 11개월 만에 전년도 수주 금액의 1.5배에 달하는 5조3000억원의 수주 성과를 기록한 점이 눈에 띕니다. 7월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소재 제약사와 1조46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시작으로 10월에는 아시아 소재 제약사와 1조7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며 역대 최대 수주 기록을 3개월여 만에 경신했습니다.
올해 제약 바이오 업계의 최대 낭보는 2건의 국산 신약 탄생입니다. 의료파업으로 임상시험 계획이 줄줄이 취소되는 상황에서도 2022년 11월 이후, 2년의 공백을 깨고 국산 37, 38호 신약이 잇따라 빛을 본 것인데요. 올해 첫 신약은 제일약품의 신약 개발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자큐보정입니다. 자큐보정은 4월에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최종 품목 허가를 승인받으며 차세대 P-CAB(칼륨 경쟁적 위산분비 억제제) 계열 신약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이어 12월에는 비보존제약이 개발한 세계 최초 비마약성, 비소염제성 진통제 어나프라주가 탄생했습니다. 어나프라주는 비보존제약의 다중·타깃 신약개발 원천기술을 통해 발굴한 약물로 기존의 마약성 진통제보다 부작용이 낮고 중독위험은 없으면서 빠른 진통 효과를 보여 의료계에서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