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승재 기자] 현대제철이 중국산 후판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신청한 데 이어, 중국산·일본산 열연강판 대상 반덤핑 조사를 추가로 신청했습니다. 해외 저가 제품 공세에 따른 경영실적 악화로 수입산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AD)' 제소에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제소가 받아들여질 경우 이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중견 제강사들의 원가가 인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국내 철강업계 내 균열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사진=연합뉴스)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지난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에 중국·일본산 열연강판 대상 반덤핑 조사를 신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지난 7월 중국산 후판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신청해 무역위 조사가 시작된 데 이어 5개월 만에 열연강판에 대해서도 반덤핑 제소 카드를 꺼낸 것입니다.
현대제철은 지난 3분기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열연강판 등 제품에 대해 산업 피해 사실관계를 검토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반덤핑 제소를 검토 중"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국내 양대 고로(용광로) 운용 철강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올해 들어 중국의 철강업체들이 자국 건설 경기 침체로 소화되지 못한 철강재를 저렴한 가격에 한국으로 밀어내고, 엔저를 등에 업고 가격을 낮춘 일본산 제품이 속속 수입되면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11월 열연강판 수입량은 약 343만톤(t)으로, 이 가운데 중국산과 일본산이 각각 153만t, 177만t을 차지해 전체 수입량의 96.2%에 달합니다. 중국·일본산 열연강판은 국내산 대비 최대 30% 가격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공장 폐쇄 등 제품 감산으로 저가물량 공세를 대응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빅2' 철강사의 경영난은 수치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포스코홀딩스의 철강부문 자회사인 포스코의 지난 3분기 실적(별도기준)은 매출액 9조4790억원, 영업이익 438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2%, 39.8% 감소했습니다. 포스코의 지난 상반기 실적도 매출액 18조7970억원, 영업이익 7130억원으로 전년대비 각각 5.6%, 34.7% 하락했습니다.
제철소에서 생산된 열연강판.(사진=연합뉴스)
현대제철도 지난 3분기 매출액은 5조6243억원, 영업이익 515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10.5%, 77.5% 떨어졌습니다. 지난 상반기 역시 매출액 11조9892억원, 영업이익 1538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1.3%, 80.8% 줄어든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현대제철의 반덤핑 제소에 대해, 동국제강과 세아제강, KG스틸 등 열연강판을 원재료로 쓰고 후공정을 거쳐 제품을 판매하는 중견 제강사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수입 열연강판에 대한 관세가 부과되면, 원가 인상 요인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 향후 관세 부과로 수입산 열연강판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경우 국내 기업에만 의존해 독과점 문제가 생긴다고 우려합니다.
아울러 이번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 추진이 과거에 이뤄졌던 수입산 스테인레스강 평판압연 반덤핑 제소와 유사하다고 주장합니다. 포스코는 지난 2020년 중국산 저가 공세로 관세 부과가 필요하다며 중국산 스테인레스강 반덤핑 제소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후 중국산 스테인리스강에 최대 25.8% 관세가 부과됐는데 이후 스테인리스강을 유통, 가공하는 업체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독점하는 열연강판 제품은 수요가 많은 특별한 제품이다. 수입산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수 많은 국내 수요 업체들한테 원가 부담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산업부는 수입산 열연강판의 저가 공세로 실적이 하락하고 있다는 특정 업체의 목소리만 듣고 이를 국내 전체 철강업계 의견이라고 결코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이승재 기자 tmdwo328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