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은 날마다 노동 현장에서 죽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의 노동 현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자는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았고 그 중 40% 이상이 건설업종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수많은 죽음들은 모두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으나 이윤은 대기업으로 들어갔고 책임은 하청 라인의 밑바닥으로 내려갔고 죽음과 고통은 노동자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이러한 산업구조가 굳어지고 죽음이 일상화됨으로써 한국 사회는 이 사태에 대한 경각심을 상실했고 감수성은 무뎌졌습니다. (…)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건축 구조물을 쌓아 올리는 방식의 경영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 산업재해는 한국 사회에 유습된 인공재난입니다. 이 죽음의 역사를 청산함으로써 기업과 노동자와 시민사회는 함께 진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주검 위에 건설 없다’ 중에서)
김훈 작가가 2020년 5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재난산재 피해가족 및 시민사회단체 문재인정부 출범 3주년, 안전한 나라를 위한 제안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8월27일, 제35회 건설의 날에 맞춰 작가 김훈은 이 같은 내용의 호소문을 냈다. 수년 전부터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를 맡아온 그는, 산업현장의 사망사고에 대해 무덤덤해진 한국 사회를 비판하며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는 다음과 같은 언론 기고문을 연필로 눌러썼다.
“그 후 10년 동안 기업이 책임져야 할 영역 안에서 2만명 이상(아아!)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팔다리가 부러지고 장기가 터지고 골병이 들었다. 또 정부가 책임져야 할 영역 안에서 대형·중형·소형 재난사고가 거듭 발생해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2022년 10월29일에는 서울 이태원에 놀러 나왔던 시민 159명이 경찰의 도움을 절규하다가 깔려 죽고 밟혀 죽었다. 이 모든 비명(非命)이 모두 일상 속에서 벌어졌으니 돌아가야 할 일상은 어디인가? 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
약육강식을 인간 세상의 불가피한 원칙이라 말하던 완고한 보수주의자는 어느새 그 약육강식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과 야만을 가장 맨 앞에서 비판하고 있다. 산재 예방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지만, 작가 김훈이 서 있는 지금의 자리가 예전보다 더 오른쪽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이 들면 보수화되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그의 변화는 더 남달라서 이마저도 그다워 보인다.
사실 그의 글을 오랫동안 탐독해온 독자로서, 이런 그의 변화는 일견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의 글 안에는 숨길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녹아들어 있다. 한겨울 손자를 업고 나와 교도소 앞에서 사위(김지하)의 출소를 기다리던 박경리 선생에 대한 에세이(‘1975년 2월15일의 박경리’)나 집안을 돌보지 않고 술에 찌들어 살던 아버지를 그린 수필(‘광야를 달리는 말’)에서 김훈의 휴머니즘은 돌올하다.
주변에 그와 가까웠던 이들이 전해준 일화들도 그의 휴머니스트 면모를 뒷받침한다. 1년여 몸담았던 신문사 후배가 사건에 연루돼 회사에서 잘린 뒤 재판받게 됐을 때, 다른 후배에게 저자 사인이 담긴 신간을 건네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전해달라고 한 일이나, 세월호 취재 때 동행한 아들뻘 사진기자를 이후에도 종종 불러 밥과 술을 사주며 우정을 이어간 일,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갑질이 몸이 베는 출판계 풍토에서 편집자들을 인간적으로 대한 일 등은 그를 따뜻한 보수주의자로 기억하게 만든다. 인정머리 없는 단문으로 일가를 이룬 그였지만, 본디 그는 인정 많은 사람이었다. 다음 회는 모든 사회부 기자들을 ‘김훈빠’로 만든 그의 문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to be continued…)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