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 논란이 산업계와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해당 부지의 전력과 용수 수급 문제를 해결할 해법으로 호남 이전론이 제기되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전 요구와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
당초 윤석열정부는 2023년 용인 처인구 일대에 삼성전자 국가산단 조성을 발표하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다. 하지만 국가산단 바로 옆 처인구 원삼면에는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공장 4개가 들어서는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단’이 예정돼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인 2018년 유치했던 사업이었다.
일반산단에 이어 국가산단이 더해지면서 용인에 새로 짓는 반도체 공장만 10개로 늘게 됐다. 전기와 물을 잡아먹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이들 지역에 필요한 하루치 전력은 원전 10~16기와 맞먹는 10~16기가와트(GW)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루에만 107만2000톤이 쓰인다는 용수도 문제다. 용인에 이 정도 규모의 전력과 용수를 공급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경제성, 정책성, 기술성, 지역균형발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예비타탕성 조사 없이 사업을 강행한 전 정권의 막무가내가 빚어놓은 결과다.
전 정부가 내놓은 수급 계획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전력의 경우 용인 현지에 1GW 규모의 LNG 발전소 3기를 짓는다 해도 나머지 막대한 물량은 호남·강원·경북에서 고압 송전탑을 통해 끌어와야 한다. 고압 송전탑이 예정된 호남과 충청, 강원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극에 달해 있다. 전국적인 송전탑 반대 조직까지 출범한 상태다. 호남과 강원·경북에서 끌어온 전기를 연결하는 안성·하남 변전소 주민들도 끝까지 싸울 태세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의 승인 처분을 무효화해달라며 환경단체들이 낸 행정소송 결론도 이번주에 나온다. 환경단체들은 아직 첫 삽을 뜨지 않은 국가산단에 대한 비수도권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수도권 전력 집중 해소와 불필요한 송전선로 건설 중단을 위한 용인 국가반도체산업단지 재검토 전국행동 회원들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및 전국행동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용수 역시 심각하다. 한강 수계의 다목적댐 여유량이 하루 8만톤 수준에 불과한 데다, 화천댐 물을 끌어오거나 하수 재이용까지 쥐어짜더라도 턱없이 부족한 형국이다. 이를 보충하려던 양구 ‘수입천댐’ 건설마저 주민 반대로 무산되면서, 물과 전기 없이 반도체를 만들어야 할 지경이다. 이전을 반대하는 이들은 정작 가장 중요한 전력과 용수 공급에 대해 구체적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사수’의 일념으로 전력과 물 부족에 대해 침묵하거나 매몰 비용만을 들이밀 뿐이다.
현 부지가 갖는 명백한 한계로 비수도권 이전론이 힘을 얻고 있지만, 대안으로 거론되는 지역 역시 약점이 없지 않다. 대표적 후보지인 새만금은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바탕으로 RE100(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사용 의무) 달성에는 유리할지 모르나, 바다를 메운 간척지 특성상 지반이 연약해 미세한 진동에도 민감한 반도체 공장 부지로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금강과 만경강 수계로는 반도체 공정 특유의 막대한 용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승패’를 가르는 싸움이 아니다. ‘무엇이 더 현실적이냐'는 지극히 실용적인 관점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기업에만 판단을 미루지 말고, 기업,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공론화에 나서야 한다. 이를 통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가 상생하는 실현 가능한 모델이 도출되길 바란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