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 중 2명만 임명하는 '쪼개기 임명'에 나섰습니다. 여야의 눈치를 본 '줄타기'를 한 셈인데요. 대통령실에서도, 정치권에서도 최 권한대행의 결정에 비판을 내놓고 있지만 헌법재판소가 '8인 체제'를 갖춤에 따라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5년 을사년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 참배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도 야도 "위헌"…'대행의 대행' 탄핵 면해
1일 헌법재판관 후보자 쪼개기 임명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를 종합하면 대통령실과 여야 모두 최 권한대행이 권한을 벗어난 위헌적 조치를 했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최 권한대행이 지난달 31일 오후 국무회의에서 정계선(야당 몫)·조한창(여당 몫)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고, 마은혁(야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은 보류한 영향입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권한대행의 범위를 벗어난 '위헌'이라는 입장을 내며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윤석열 씨에 대한 탄핵 소추를 결정한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은 위헌적 결정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통령실에서는 정진석 비서실장·성태윤 정책실장·신원식 국가안보실장 등 3실장과 수석비서관 전원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비관료 출신의 국무위원들도 국무회의에서 직접 사의까지 표명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들은 이미 '12·3 비상계엄'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지만, 최 권한대행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거듭 사의 의사를 밝힌 겁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대통령 탄핵 심판은 국가 중대사다. 어느 때보다 재판 과정에서 적법 절차의 완결성이 중요하다"며 "헌재가 탄핵 기각과 인용 중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우리 사회는 극심한 대립과 혼란 겪을 것"이라고 압박했습니다.
야당도 최 권한대행의 결정이 위헌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는데요. 반대로 야당은 여야가 합의한 마 후보자 임명을 보류한 것이 중대한 위법 행위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최 권한대행이 마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보류한 건 분명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도,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친 만큼, 추가 탄핵은 자제하겠다고 밝힌 상황입니다.
최 권한대행이 어느 한 쪽의 긍정적 평가도 받지 못한 채 줄타기한 셈인데요. 거대 야당의 탄핵 압박은 피해간 모양새가 됐습니다.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인 최 권한대행 특유의 성향이 드러난 대목입니다.
그는 "계엄으로 촉발된 경제 변동성은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와 권한대행 탄핵 소추 이후 급격히 확대됐다"며 "경제와 민생 위기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 권한대행은 스스로 '월권'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탄핵정국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모습. (사진=뉴시스)
'박근혜 탄핵' 구성과 동일…심판 지연 땐 '변수'
하지만 최 권한대행의 이 같은 결정에 따라 '내란 수괴' 피의자로 탄핵 소추된 윤석열 씨에 대한 탄핵 심판에는 속도가 붙을 전망입니다. 여기에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심판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청구한 각종 권한쟁의 심판도 이른 시일 내 판단이 나올 것으로 관측됩니다.
헌법재판소는 75일 만에 '6인 체제'를 벗어나,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때와 같은 '8인 체제'를 완성하게 됐습니다. 이미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8인의 탄핵 심판 선례가 남아있는 만큼 정당성 논란은 일축할 수 있게 된 셈입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소추를 인용하려면 재판관 6명의 동의가 필요하고, 사건을 심리하기 위해서는 7명의 출석이 필요합니다. 6인 심리에 6인 심판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한 겁니다. 이른바 '탄핵 인용·기각 불복' 사태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변수는 남아있습니다.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이 오는 4월 18일 퇴임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자리는 대통령 지명 몫인데요. 만약 이때까지 윤 씨에 대한 탄핵 심판을 마무리 짓지 못한다면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충원이 어려워 다시 '6인 체제'로 복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