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도수치료, 영양제, 해외 충격파 치료 등 비중증·비급여(건강보험 미적용)가 전체 진료비를 견인하자 정부가 개편안을 내놨습니다. 남용되는 비급여 항목을 '관리급여'로 신설해 관리하고 본인부담률을 90~95%로 올립니다. 급여와 비급여 진료가 동시에 이뤄지는 '병행 진료'는 환자가 진료비를 100% 부담하는 방식으로 급여 제한을 추진해 실손보험으로 인한 의료 남용을 막는다는 복안입니다.
경증 비급여, 실손과 결합해 의료자원 쏠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는 9일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정책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비급여·실손보험 개편 초안을 공개했습니다. 지난해 8월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에서 비급여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표준화 추진 계획을 발표한 데 따른 후속조치입니다.
노연홍 의개특위 위원장은 "비급여는 급여와 달리 자유 영역으로 간주해 별도 관리를 안 했으나 필수의료 기피 해소 등 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해 과잉 비급여에 대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습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동반자인 의료계가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비급여 제도 개혁을 통해 지역의료에 투자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정부는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비급여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인데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비급여 진료비는 매년 증가해 2014년 11.2조 원에서 2023년 20.2조 원으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서남규 건보공단 비급여관리실장은 "비급여가 중증질환 등 필요한 치료에 쓰이면 의미가 있지만 내용을 보면 경증 비급여가 많은데 실손과 결합하면서 증가율이 크다"고 전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빵집의 인기가 높아지면 우후죽순 빵집이 생기고 비슷한 제품을 팔게 되는데요. 의대 정원은 한정돼 있는 상황에서 의료자원이 전부 비급여 실손이 커버되는 항목으로 쏠림으로써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관리급여' 신설…병행진료 시 '급여 제한'
이번 개편 방안의 핵심은 '관리급여' 신설입니다. 남용 우려가 크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비급여 항목을 일부 선별해 일단 급여 형태로 건강보험 관리영역에 포함시키는데요.
일반적으로 진료비의 법정 본인부담금은 입원 20%, 외래 30%, 중증은 5~10%인데, 관리급여 영역에 들어오면 90~95%의 본인 부담금을 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일반 질환으로 입원진료를 받으면 10만원의 진료비 중 환자는 2만원을 지불하는데요. 관리급여로 들어오면 10만원이 드는 도수치료의 경우 최대 9만5000원을 환자가 지불하고 건보공단이 5000원을 부담하게 됩니다.
미용·성형 등 비급여 진료를 하면서 실손보험 청구를 위해 급여 진료를 함께 하면 급여 진료도 모두 본인이 비급여로 부담하도록 하는 '병행진료 급여 제한'도 추진합니다. 현재 백내장 수술 후 다초점 렌즈를 삽입할 경우 백내장 수술비는 건보공단에서 지급하지만 렌즈는 비급여라 환자가 부담해야 합니다. 제도가 개편되면 비급여와 병행된 급여항목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되는 겁니다.
또 비급여항목 재평가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부족한 항목은 퇴출시킵니다. 의료기술 평가단계에서 근거가 없어 나타나지 않던 문제들이 나중에 발생할 수 있어서입니다.
현재 비급여 가격 공개 항목에 대해 일부 설명 의무가 있지만, 앞으로는 비급여 대상에 항목, 가격, 사유 등까지 설명의무를 확대하고 환자 동의도 받도록 할 예정입니다.
정부는 비급여 통합포털도 마련한다는 방침인데요. 건보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연구원에 산재한 비급여 가격 정보를 한 곳에서 제공합니다.
5세대 실손보험 윤곽도 공개됐는데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진료의 경우 일반질환자와 중증질환자를 구분해 자기 부담률을 차등화합니다. 일반질환자는 실손보험 자기부담률을 건강보험 본인부담률과 동일하게 적용하는 반면, 중증질환자는 종전과 같이 최저 자기부담률 20%를 적용합니다.
"가격 관리 역부족…의료계 자정 노력 필요"
정부가 비급여 억제를 위해 실손 본인 부담률을 대폭 올리는 정책을 내놨지만,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여전히 아쉽다는 반응을 내놨습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보장팀장은 "정책이 의료비 부담 완화로 귀결돼야 하지만 제시한 내용 중 실제 가격을 관리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관리급여'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이조차도 비급여에 대한 관리가 아니라 급여로 포함해 관리하는 만큼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남 팀장은 "건보 재정 부담으로 많은 항목을 못 하고 맛보기로 아주 소수만 하게 되면 나머지 비급여는 그냥 방치된다"며 "전체적인 비급여 실태를 파악하고 선별급여에 넣어 아니면 퇴출시켜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보고제도의 경우 40개에서 600개로 확대하는 데 10년이 걸린 만큼 보고항목 확대도 지난한 싸움이 될 것 같다"며 "의개특위에서 6개월을 논의했으면 전체 보고 의무화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라고 강조했습니다.
비급여 재평가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암 환자 비타민C 주사의 경우 암 전문병원에서 현재 패키지로 판매를 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관리하는 이가 없다"며 "직접적 가격관리 방안이 빠져 있는데 비윤리적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의료계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비급여 관리 및 실손보험 개혁방안 정책토론회'(사진=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