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지윤 기자] 카드사들이 해외 후불결제(BNPL)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국내 BNPL 서비스는 규제가 엄격한 데다 신용카드와 차별성이 크지 않아 수익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3일 금융업계에 따름면 BNPL 서비스는 일종의 외상거래로 젊은 층에서 선호하는 소비 방식입니다. 당장 현금이나 신용카드가 없어도 상품을 우선 결제하고 나중에 갚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신용카드와 달리 연회비도 없습니다. 지난 2005년 스웨덴 핀테크 기업인 클라르나(Klarna)가 처음 도입해 유럽과 미국, 호주 등에서 서비스가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미국 금융소비자 보호국(CFPB)은 올해 초 대형 BNPL 업체로부터 비 식별화한 데이터를 제공받아 BNPL 이용자를 분석했는데요. 그 결과 지난 2019년 일평균 BNPL 대출 신청 건수는 10만건 정도였으나, 2022년 100만건을 돌파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같은 기간 대출 승인율도 평균 56%에서 79%로 상승했습니다. 현재 CFPB는 지난해 5월 BNPL 이용자도 대출 진실 법(TILA)에 따라 신용카드 수준의 소비자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BNPL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도 BNPL 사업체 성장세가 눈에 띕니다. 클라르나는 지난해 3분기 2억1600만 스웨덴 크로나(약 294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것을 발판으로 올해 미국에서 기업공개(IPO)를 추진합니다.
하지만 국내에선 BNPL 서비스가 활성화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지난 2022년 현대카드가 가장 먼저 무신사와 제휴를 맺고 한정판 마켓인 '솔드아웃'에서 분할결제를 지원했으나 출시 2개월 만에 재정비를 이유로 서비스를 전면 중단했습니다. KB국민카드도 그해 상반기 BNPL 서비스 개발을 위해 '다날'과 손잡았지만, 채권 매입 방식의 BNPL 서비스만 선보인 뒤 작년 말에 제휴를 종료했습니다. 이 외 다른 카드사들은 국내 BNPL 서비스 출시 자체를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티몬·위메프 사태 이후 전자금융거래법 시행령을 개정한 뒤 까다로워진 BNPL 겸영 요건에 카드사들이 BNPL 사업자와의 제휴마저도 부담을 느끼는 모양새입니다. 당시 금융위는 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상 BNPL 서비스가 신용카드와 유사하게 신용공여 성격을 지닌다는 점을 고려해 대출성 상품으로 규정하고 기존 금융상품과 동일한 금융소비자보호법상 판매 규제를 적용했습니다. 금융감독원도 BNPL 사업자 보고 의무를 보강하는 내용을 담아 내부통제를 강화했습니다.
카드사들은 부채비율 180% 이하 수준을 맞춰야 하는 점이나 최고 이용 한도가 30만원에 그친다는 점도 BNPL의 매력을 떨어뜨린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지난 2021년 금융위가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토스의 BNPL 서비스를 혁신 금융 서비스로 지정한 뒤 카드업권 내부적으로 경계 목소리도 있었으나 신용카드에 비해 한도가 낮고 편의성 측면에서도 특장점이 없어서 신용카드가 대중화한 국내에선 성장이 잘 안 이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상황이 이렇자 카드사들은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베트남 등 신용카드가 상대적으로 덜 활성화 돼있는 동남아 지역이 주타깃입니다.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과 달리 체계적인 신용평가모델이 만들어지지 않아 신용카드 보급이 더딘 편입니다.
실제 신한카드는 지난해 연말 베트남 현지 법인인 신한베트남 파이낸스(SVFC)를 통해 베트남 최대 리테일 유통기업인 모바일 월드와 업무협약 체결하고 BNPL 서비스 출시를 예고했습니다. 롯데카드도 작년 4월 롯데 파이낸스 베트남을 통해 베트남 전자상거래(이커머스) 및 전자지갑(e-Wallet) 회사인 잘로페이와 협약을 맺고 BNPL 서비스를 현지에 출시했습니다. 앞서 2022년 베트남 이커머스 기업인 티키(Tiki)와 제휴를 맺고 BNPL 서비스를 내놓은 이래 2번째입니다.
장명현 여신금융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미성년자나 가정주부 등도 가족 등을 통해 신용카드 발급이 쉬운 데다 무이자 할부까지 가능해 BNPL 활성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외국처럼 카드보다 비싼 수수료를 받기도 애매하고, 건전성 관리 측면에서도 어려움이 있기에 카드사들이 국내에서 BNPL 서비스로 수익을 거두려면 BNPL 최대 장점인 '무이자 할부' 이상의 강점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도안 반 히우 엠 모바일 월드 모바일·가전 부문 최고경영자(왼쪽)와 문동권 전 신한카드 사장이 지난해 12월 양사의 전략적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신한카드)
임지윤 기자 dlawldbs2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