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두가족'의 숙명?…'영풍-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배경은

영풍·MBK, 고려아연 경영진 검찰 고발
경영권 분쟁, 법적공방에 연이은 '혈투'
환경오염·신사업 추진 두고 갈등 고조

입력 : 2025-02-03 오후 5:15:12
[뉴스토마토 이승재 기자] 고려아연 경영진과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MBK파트너스(MBK) 연합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포함해 측근 다수를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고발, 신고하는 등 양측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영풍과 고려아연의 싸움이 경영권 분쟁에서 시작해 법적 분쟁으로 번져가는 가운데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시작해 갈라서게 된 이들의 과거가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 (사진=연합뉴스)
 
영풍·MBK 측은 3일 최 회장과 고려아연 손자회사인 썬메탈코퍼레이션(SMC)의 전현직 이사진들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영풍·MBK 연합은 "최 회장은 자신의 자리보전을 위해 탈법적인 출자구조를 만들어내는 등 유례없는 위법행위들을 저질렀고, 이로 인해 주주권과 자본시장 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이에 동조한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 이성채 SMC 법인장, 최주원 SMC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배임)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영풍·MBK 측은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모회사 계열사가 경영상 필요가 뚜렷하지 않음에도 다른 회사의 주식을 모회사 회장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매입해 그 목적 달성에 이용된 것에 불과한 경우,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 회장 측의 승리로 끝난 지난달 임시 주주총회 결과에 대한 영풍·MBK 측의 법적 대응이 전방위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앞서 영풍·MBK 측은 지난달 31일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금지를 회피하는 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이들 4명을 공정위에 신고하기도 했습니다.
 
영풍·MBK측은 이들이 지난달 23일 고려아연 임시주총에서 영풍·MBK의 이사회 장악이 거의 확실시되자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신규 상호출자를 형성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서, 고려아연은 임시 주총 전날 SMC가 영풍 지분 약 10.3%를 취득해 '고려아연→선메탈홀딩스(SMH)→SMC→영풍→고려아연'의 순환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에 회사와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 또는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고 규정한 상법 369조 3항에 따라,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의결권을 제한시켰습니다. 영풍은 고려아연 지분 약 25%(526만2000여주)를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고려아연의 의결권 제한으로 임시 주총에서 이사회 장악에 실패했습니다.
 
지금은 사활 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머쓱하게도 두 기업의 뿌리는 같습니다. 고려아연의 모기업인 영풍그룹은 1949년 11월 장병희·최기호 공동 창업주가 설립한 '영풍기업사'가 모태입니다. 영풍그룹은 현재 석포제련소를 운영하는 영풍을 장씨 일가가, 온산제련소를 운영하는 고려아연을 최씨 일가가 경영을 각각 담당해 왔습니다. 양가는 지분을 나눠 현재까지 76년 동안 동업해왔습니다.
 
영풍제련소 주변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피해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2022년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영풍 석포제련소에 대한 '통합환경허가' 불허 및 폐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갈등이 불거진 것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난 2021년 11월 환경부는 영풍 석포제련소가 수년간 낙동강에서 중금속 발암물질인 카드뮴 오염수를 불법 배출했다며 과징금 281억원을 부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풍이 석포제련소에 저장돼 있는 폐기물을 직접 처리하지 않고 고려아연에 떠넘기려 시도했다는 의혹이 일었습니다. 당시 고려아연 측은 영풍이 폐기물을 돈을 주고 사가라는 등 부당한 요구를 했다고 주장했고, 영풍 측은 고려아연과 폐기물 처리 논의는 했지만 고려아연의 온산제련소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양사가 진실 공방을 벌였습니다. 
 
여기에 최 회장의 고려아연 신사업 추진 방식을 둘러싸고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습니다. 최 회장은 지난 2022년 고려아연을 2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사업, 신재생에너지 및 그린수소 등 3대 사업을 주축으로 재편하려는 내용의 신사업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이에 영풍은 고려아연의 신사업 움직임에 즉각 우려를 밝혔습니다. 최 회장이 신사업을 위해 현대자동차와 한화, LG화학 등 외부 자금을 끌어들였는데, 이같은 경영 방식이 과거부터 이어온 '무차입 경영' 기조와 맞지 않다는 이유가 골자였습니다.
 
지난해 9월, 영풍이 고려아연 지분 확보를 위해 사모펀드인 MBK와 손을 잡으면서 갈등 양상은 다른 국면을 맞았습니다. 영풍·MBK 측은 고려아연 경영권을 인수하기 위해 고려아연 주식 공개 매수를 시작했고, 이에 질세라 최 회장 측 역시 경영권을 수성하기 위한 대항 공개매수를 진행했습니다. 양측은 각각 세 차례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며 지분 매입 경쟁을 벌였으나 모두 지분 과반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후 경영권 싸움은 임시 주총의 표 대결로 넘어갔습니다.
 
임시 주총을 앞두고 최 회장 측은 MBK·영풍 측이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집중투표제(선임될 이사 수만큼 주주에게 의결권을 부여하고 이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게 하는 제도) 방식의 이사 선임을 추진했습니다.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의 이익은 무시해온 관행에서 집중투표제는 재벌 총수가 스스로 이사회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름 없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울며 겨자먹기'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흩어져 있는 최 회장 측 우호 지분을 자신이 내세운 이사 후보에게 몰아줘 이사회 장악을 이어가려는 고육지책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최 회장은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무리하게 2조5000억원 유상증자를 추진했다가 소액주주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철회한 점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MBK·영풍 측이 낸 집중투표제 의안상정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집중투표제 도입은 물 건너 갔습니다.
 
세계 1위의 비철 생산기업인 고려아연이 적자를 기록하는 모기업 영풍에 매년 배당금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져가려는 자와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는 자의 싸움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승재 기자 tmdwo328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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