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속의 미세플라스틱(사진=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 캡처)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내 머릿속의 지우개’. 2004년에 나온 영화 제목이다. 주인공의 유난히 심한 건망증을 상징하는 제목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머릿속에는 작은 지우개만큼의 플라스틱이 들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 내 미세플라스틱 및 나노플라스틱(Microplastics and Nanoplastics, MNPs)의 농도가 증가하면서, 인간의 노출과 건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 앨버커키 뉴멕시코 대학 약리학과 매쓔 캠펜(Mattheu Campen)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인간의 뇌에는 미세플라스틱이 최대 한 숟가락 무게(약 7그램)만큼 들어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이번 주 화요일 의학저널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발표했습니다.
연구진은 사망한 인간의 뇌에서 ‘거의 믿을 수 없는(almost unbelievable)’ 수준의 미세플라스틱과 나노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듀크대학교 신경퇴행 및 신경치료 센터(Center for Neurodegeneration and Neurotherapeutics) 앤드류 웨스트(Andrew West) 교수는 사이언스 뉴스(Science News)와의 인터뷰에서 “데이터를 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미세플라스틱, 주로 폴리에틸렌
조직 내 MNPs를 정밀하게 검출하기 위해 열분해 질량분석법, 적외선 분광법, 전자현미경 분석 등을 보완적으로 사용한 결과, 인간의 신장, 간, 뇌에서 MNPs가 확인됐습니다. 이들 장기에 존재하는 MNPs는 주로 폴리에틸렌이며 그 외에도 다른 고분자 물질도 유의미한 농도로 검출됐습니다.
특히 뇌 조직에서는 신장이나 간 조직보다 폴리에틸렌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편광파 전자현미경 분석을 통해 분리된 뇌 속의 MNPs가 대부분 나노 크기의 파편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도 확인됐습니다.
특히 치매 진단을 받은 사망자의 뇌에서는 인지적으로 정상인 사람들의 뇌보다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3배에서 5배 더 높았습니다. 이들은 뇌혈관 벽과 면역세포에 두드러지게 침착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뇌 속의 높은 미세플라스틱 농도와 치매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혀냈을 뿐,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치매로 인한 변화가 미세플라스틱이 뇌에 쉽게 축적되도록 하는 요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뇌 속 미세플라스틱 농도 치매와의 상관성
미세플라스틱과 나노플라스틱은 일상적인 포장재, 용기, 의류, 타이어 등이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미세한 플라스틱 조각입니다. 이 작은 입자들은 에베레스트산 정상부터 마리아나 해구에 이르기까지 지구 전역에 퍼졌으며, 심지어는 태아의 몸속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2024년 9월에는 비강 뒤에 있는 일종의 뇌 조직인 후신경구(olfactory bulb)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됐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로 미세플라스틱이 실제로 뇌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연구진은 먼저 2016년과 2024년에 사망한 환자의 뇌, 신장, 간 조직을 분석했고, 더 넓은 시각에서 연구하기 위해 1997년부터 2013년 사이에 사망한 환자의 뇌 조직도 함께 조사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생전에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었습니다. 연구진이 분석한 뇌 조직에서는 간과 신장 조직보다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7배에서 30배까지 높게 나타났습니다.
뇌의 플라스틱 축적량 시간이 갈수록 늘어
연구 결과 체내에서 검출된 미세플라스틱의 양은 환자의 연령, 성별, 인종, 민족, 사망 원인과는 무관했지만 사망 시점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습니다. 2024년에 사망한 환자의 뇌 조직에서는 2016년 샘플보다 평균적으로 50% 더 높은 수준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됐습니다.
이러한 체내 미세플라스틱의 증가추세는 플라스틱 생산량의 증가와도 맞물립니다. 1950년대 이후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10~15년마다 두 배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현재 속도가 유지될 경우 2050년까지 연간 12억 톤이 넘는 플라스틱이 생산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입자가 통념처럼 둥글고 매끈한 구슬 형태가 아니라, 얇고 날카로운 파편 형태라는 사실에도 주목했습니다. 연구논문의 공동저자인 캠펜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몸에 들어온 나노플라스틱은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을 통과해 뇌로 침투한다”고 밝혔지만, 미세플라스틱이 어떤 경로를 통해 뇌로 이동하는지, 그리고 장기적으로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