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혹등고래도 인간의 언어 패턴으로 소통

멘제라트 법칙과 지프(Zipf)법칙, 혹등고래 소리에도 나타나
뉴칼레도니아 해안의 혹등고래 소리 8년간 녹음 분석
‘전이 확률’로 신호 인식하고 학습

입력 : 2025-02-11 오전 9:28:40
혹등고래(사진=해양 포유동물 센터(The Marine Mammal Center))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청각적 의사소통의 효율성은 많은 생물종에서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입니다. 먹이활동, 짝짓기, 사회적 관계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물론 다른 동물의 소리를 통한 의사소통 시스템에서도 소통의 효율성이 중요합니다.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는 모두 7000여종에 달합니다. 이렇게 언어가 다양하지만 그 패턴에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법칙이 있습니다. 소통 능력을 최적화하기 위한 멘제라트 법칙(Menzerath’s law)과 지프의 축약 법칙(Zipf’s law of abbreviation)입니다. 각각 이 법칙을 발견한 독일 언어학자 파울 멘제라트와 미국 언어학자 조지 지프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이런 법칙은 문법과 구문과 관계없이 특정 단어를 얼마나 자주 사용하고 그 단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예측하는 통계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멘제라트 법칙은 설명이나 대화가 길어질수록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짧고 간결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긴 이야기를 할 때 “그렇지”, “맞아”, “내 말이”와 같이 짧지만 함축적인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 길어질수록 문장 속 단어가 더 짧고 간결해지는 경향을 나타내는 법칙입니다.
 
지프의 축약 법칙은 가장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두 번째로 흔한 단어보다 두 배 더 자주 사용되며, 세 번째로 흔한 단어보다 세 배, 네 번째 단어보다 네 배 더 자주 사용되는 멱함수(冪函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 대학 해양포유류 연구팀의 엘렌 갈랜드, 에든버러 대학의 사이먼 커비, 캘리포니아 주립 산타크루즈 대학 제니 앨런, 뉴칼레도니아 대학 클레어 가리그, 히스라엘 히브리대학의 인발 아르논 교수 등이 참여한 다국적·다학제 연구진은 남태평양 뉴칼레도니아에서 8년 동안 녹음한 혹등고래가 내는 소리를 녹음해 분석한 결과를 지난 7일 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사회적 학습과 인지 진화 전문가인 갈랜드 교수는 혹등고래가 내는 소리를 아기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리의 흐름 속에서 통계적 패턴을 통해 개별 단어를 구별하는 법을 적용했습니다. 아이들은 특정한 연속적인 사건들, 예를 들어 음성이나 단어, 또는 다른 유형의 신호가 시간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을 의미하는 ‘전이 확률(Transitional Probability)’에 따라 언어를 인식하고 배웁니다.
 
연구진은 이런 음성적 분절의 통계를 이용하여 고래가 내는 소리를 분석해 혹등고래의 소리에서 인간의 언어와 같은 패턴을 발견하고 혹등고래가 내는 소리가 ‘지프의 법’을 따르고 있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전이 확률을 기준으로 했을 때, 혹등고래가 내는 소리는 지프 법칙에 완벽하게 일치했습니다.
 
언어의 구조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는 문화적 전승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연구진은 지프의 법칙이 인간뿐만 아니라 순차적 음성신호가 문화적으로 학습되는 다른 동물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를 갖는 어휘는 인간의 전유물이지만 새, 박쥐, 영장류, 코끼리, 물개, 돌고래, 고래 등 소리로 소통하는 거의 모든 동물들은 유전적으로 입력되거나 학습된 신호를 통해 소통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한편 이 논문보다 하루 먼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논문에서 뉴욕 스토니브룩 대학의 메이슨 영블러드 연구원은 고래가 내는 소리에서 두 가지 추가적인 특성을 발견했다고 보고했습니다. 하나는 다름아닌 ‘멘제라트 법칙’입니다. 이는 인간 언어에서 더 흔한 단어일수록 더 짧고, 짧은 어휘일수록 빈번히 사용하는 법칙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앞에서 설명한 멘제라트 법칙입니다. 이는 고래들의 소리가 문화적으로 전승 학습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 연구를 통해 고래들이 내는 소리가 인간의 언어와 비슷한 패턴을 지니고 있다는 게 밝혀지고 있지만 과연 인간처럼 복잡한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 혹등고래 음성 연구에 참여한 엘런 가랜드 박사는 고래 소리에 들어있는 ‘단어’는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습니다. 사실 음악도 의미를 전달하는 단어를 포함하고 않지만 문화적으로 전승되는 언어적 패턴을 보여줍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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