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수술 후 조직 유착, 생체 젤로 막는다

조직을 보호하는 차세대 생체 소재, 세포외기질 하이드로겔(ECM Hydrogel)

입력 : 2025-10-13 오전 9:57:27
ECM하이드로 겔이 복부 수술 후 유착을 막는 것을 보여주는 챗GPT 생성 이미지.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개복 수술이나 복강경 수술을 받은 뒤에는복강 내 장기나 조직끼리 달라붙는 유착(adhesion) 현상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은 수술 상처의 치유 과정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수술로 조직이 손상되면 인체는 상처를 메우기 위해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그 부위에 콜라겐 같은 섬유성 단백질을 쌓아 흉터를 만듭니다. 문제는 복강 속 장기들이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손상된 표면끼리 맞닿으면 이 흉터 조직이 다른 장기와 붙어버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유착은 시간이 지나도 저절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2021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수술 후 유착이 생기는 비율은 수술 부위나 방법에 따라 70~90%에 이릅니다. 대부분은 증상이 없거나 경미하지만, 일부 환자는 복통, 장폐색, 불임 등의 후유증을 겪습니다. 
 
지금까지는 유착을 막기 위해 합성 고분자 필름이나 젤 형태의 차단막을 주로 사용해왔습니다. 이들은 일정 기간 동안 조직 사이를 막아주는 역할은 하지만, 생체적응성이 낮거나 염증을 유발하는 등 한계가 있었습니다. 
 
국제 공동연구진, ‘세포외기질 하이드로겔’ 제시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 자치대학(Universidad Autónoma de Madrid), 로마 사피엔자 대학(La Sapienza University),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Imperial College London), 그리고 미국 휴스턴의 바이오 스타트업 TYBR Health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국제 연구팀은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습니다. 
 
연구팀은 세포외기질 하이드로겔(Extracellular Matrix Hydrogel, ECM 하이드로겔)이라는 물질을 수술 후에 처치했습니다. 이 물질은 인체 조직의 원래 구성 성분과 비슷합니다. 콜라겐, 엘라스틴, 프로테오글리칸 등 천연 ECM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어, 세포가 젤 위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체온과 pH 조건에서 스스로 응고되므로 수술 현장에서 스프레이나 주사로 쉽게 적용할 수 있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체내에서 흡수·분해되어 잔여물도 남지 않습니다. 
 
연구진은 이 젤이 단순히 조직과 조직을 물리적으로 막는 차단막이 아니라, 주변 염증을 조절하고 복막의 중피세포층(mesothelial lining)을 회복시키는 역할까지 수행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쥐와 토끼 실험에서 ‘유착 억제’ 뚜렷
 
연구팀은 쥐와 토끼를 대상으로 대장 수술 및 부인과 수술 모델을 만들어 ECM 하이드로겔을 시험했습니다.
 
그 결과, ECM 하이드로겔을 사용한 그룹은 비교군보다 유착의 강도와 넓이가 현저히 낮았습니다. 또한 염증을 유발하는 사이토카인의 발현이 줄었고, 손상된 조직의 중피세포층이 더 온전하게 보존되었으며, 유착을 형성하는 근섬유모세포(myofibroblast) 의 활성도 감소했습니다. 
 
실험실에서 인장·수축 등 기계적 자극을 가한 경우에도, 이 젤은 세포가 다른 형태로 변하는 과정을 억제했습니다. 다시 말해 ECM 하이드로겔이 유착의 초기 원인인 염증과 세포 변화 자체를 조절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단을 넘어, 조직 회복 효과
 
이번 연구의 핵심은 ECM 하이드로겔이 단순히 물리적 차단막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생물학적 환경을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즉, 조직이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염증 반응과 세포 변화를 동시에 제어해 유착이 생기는 흐름 자체를 바꿔놓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에게도 ECM 하이드로겔이 같은 효과를 낸다면, 수술 후 통증과 재수술 위험을 크게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아직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우선 인체 조직에서도 면역 거부 반응이나 부작용이 없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어느 농도와 시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때 가장 효과적인지를 규명하는 최적 사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재생의료에 전문 바이오 스타트업 TYBR Health는 현재 ECM 하이드로겔 제품을 기반으로 상용화와 임상 적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논문 링크: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translmed.adn3179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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