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제약 바이오 기업이 신약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비용은 수익성 악화의 주범으로 꼽히지만 본연의 사업목적 달성과 기업가치 상승을 위해서는 필수입니다. 연간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연구개발 비용은 당장은 기업 실적에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미래 성장 동력인 신약을 확보하기 위해 공들여 투자해야 하죠.
시가 총액 기준 상위 5대 제약사의 지난해 3분기 누적 연구개발 투자 비율을 살펴보면 대웅제약이 18.26%로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으로 한미약품(15.0%), 유한양행(12.8%) 녹십자(9.80%), 종근당(9.13%)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개발비 규모로는 2011억원을 투자한 유한양행이 5대 제약사 중 가장 많았습니다.
공격적인 연구개발 투자는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가져오는 요인이기 때문에 양날의 칼로 여겨집니다. 실적 악화 부담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안은 자체 연구개발 성과로 얻은 수익과 매출을 신약 연구개발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R&D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역대 최대 매출 원인은 'R&D 선순환 구조' 안착
지난해 국내 제약사 중 최초로 매출 2조를 돌파한 유한양행은 연구개발비가 전년 동기 대비 67.4% 증가했습니다. 유한양행의 신약 파이프라인에 항암 치료제 YH42946과 고셔병 치료제 YH35995가 추가되면서 연구개발비가 급증했습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전년보다 11.2%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은 16.4% 감소했죠. 다만 자체 개발한 신약 매출 확대로 기술료 수익이 크게 늘었습니다. 유한양행의 기술료 수익은 1052억원으로 전년도 112억원에서 9배 이상 수직상승 했습니다. 이 때문에 연구개발 역량으로 쌓은 신약 경쟁력이 업계 최초 매출액 2조 달성을 뒷받침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아울러 연구개발로 발생한 수익이 신약 파이프라인에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안정화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특히 폐암 신약 렉라자 수출로 발생한 수익이 R&D 선순환에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8월 렉라자와 존슨앤드존슨의 항체 신약 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이 미국에서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허가돼 약 870억원의 단계적 기술료를 수령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면서 국내 처방액이 전년 대비 53% 늘었습니다. 렉라자는 올해도 해외 판매에 따른 로열티 수익과 유럽과 일본 시장 출시를 앞두고 있어 연구개발 투자 성과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신약 후보 물질들의 임상 결과 발표도 앞두고 있습니다. 김혜민 KB증권 연구원은 "퇴행성 디스크 치료제 YH14618의 임상3상 탑라인 결과는 올해 2분기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이중타깃 대사이상지방간염(MASH) 치료제 후보물질 BI3006337 등의 연구개발도 순항 중"이라며 "R&D 이벤트들이 대기하고 있어 시장 전망이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으로 시끄러웠던 한미약품은 1조4955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습니다. 매출액만 놓고 보면 역대 최고 실적이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2%, 13.2% 감소했습니다. 한미약품은 작년 한 해 동안 연구개발비로 전체 매출의 14%에 해당하는 2098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이는 전년보다 27.2% 증가한 수치입니다.
한미약품도 자체 개발 제품을 통해 얻은 수익을 신약 R&D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차세대 개량·복합신약의 릴레이 출시를 준비하고 있고, 내년 하반기 출시 목표인 비만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임상3상이 진행 중입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R&D 부문에서 신규 모달리티를 접목한 차별화 전략을 통해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며 "작년 한 해 동안 글로벌 학회에서 항암, 비만 대사, 희귀 질환 분야 혁신 신약 연구 결과 39건을 발표하는 등 끊임없이 R&D 성과들을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약개발 전담 자회사 신설, 수익성 개선
연구개발 전담 자회사를 신설해 체질 개선을 시도한 일동제약은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습니다. 일동제약은 2020년 4분기 5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이후 2023년 3분기까지 12분기 연속 적자를 냈습니다. 일동제약은 2023년 11월 R&D 자회사 유노비아를 분사한 이듬해 51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 했습니다.
일동제약은 연구개발 비용 절감으로 인한 실적 개선과 신약 개발 자회사들의 성과를 동시에 누리고 있습니다. 유노비아는 대원제약과 소화성 궤양용제 신약 ID120040002의 공동 개발 및 라이선스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계약으로 대원제약으로부터 계약금과 함께 상업화 성공에 따른 로열티 등을 수령하게 됩니다. 유노비아 입장에서는 신약 개발 비용 부담도 덜고 상업화 성공 시 수익금까지 얻게 되는 구조입니다.
일동제약의 신약 연구개발 회사 아이리드비엠에스가 개발 중인 혁신 신약 후보물질 IL21120033은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특발성 폐섬유증(IPF)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았습니다. 전임상 연구 결과에 따르면 IL21120033은 경구 투여 시 이상적인 약동학적 특성과 기존 표준 치료법 대비 우수한 항섬유화 효능을 나타냈습니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다양한 동물 실험에서 체중 감소 등 기존 치료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 관찰되지 않거나 미미해 안전성 요건 충족도 기대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