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종류의 병원 바이러스 (사진=게티이미지)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우주에는 암흑 물질이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데 일반 물질과는 달리 빛이나 전자기파를 방출하거나 반사하지 않아 관찰할 수 없습니다. 일반 물질은 우주의 5퍼센트에 불과하고 암흑 그 세 배가 넘는 27퍼센트나 됩니다. 나머지는 암흑 에너지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도 암흑 물질과도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바이러스입니다. 하버드 대학 브로드 연구소(Broad Institute)의 커티스 허튼하워 교수가 2016년 '네이처 리뷰 마이크로바이올로지(Nature Reviews Microbiology)'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 몸속에는 380조개의 바이러스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 과학자들은 새로운 유전자 시퀀싱 방법을 이용해 침, 혈액, 대변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바이러스를 발견했습니다. 이 기술은 또 바이러스 유전자의 복제본을 계산해 몸속의 전체 바이러스 수를 추정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런 방법을 통해 대변 1g에는 수십억개의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물론 이런 추정치는 학자들에 따라 큰 편차가 있지만, 수천 종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바이러스 한 개의 질량은 1펜토그램, 즉 10?¹?g에 불과해 우리 몸속에 10¹?개의 바이러스가 있다고 해도 그 무게는 1그램에 불과한 미미한 존재입니다.
코비드-19를 통해 경험했듯이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극한의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항생제가 발명된 이후, 바이러스는 인류 건강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러스는 겨우 존재하지만 생명체의 비밀을 간직하는 동시에 생명체를 위협하는 체내의 암흑 물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단백질 껍데기, 그리고 DNA와 RNA같은 유전물질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체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세포와 대사활동이 없습니다. 숙주의 세포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만 단백질을 합성해 자기복제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복제 과정에서 다른 종류, 즉 변종을 만들기도 합니다.
체내에 있는 모든 바이러스가 위협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감기, 독감, 에볼라, 뎅기열, 헤르페스 같은 전염병의 병원체가 되거나 장내 박테리오파아지 같은 바이러스는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정체와 기능이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공생바이러스(commensal virus)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인간 장내에서 박테리오파지는 숙주 박테리아를 전멸시키지 않고 하나의 숙주 박테리아에서 다른 박테리아로 유전자를 이동시킬 수 있어서 박테리아의 생존을 지속시킬 수 있고 이런 박테리아가 유익균일 경우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거대세포바이러스(cytomegaloviruses)는 자외선에 의해 손상된 피부 세포가 암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우리 체내에 있는 바이러스를 통틀어 휴먼 바이롬(human virom)이라고 합니다. 휴먼 바이롬 연구는 바이러스가 질병을 일으키는 존재라는 좁은 개념에서 벗어나 질병 치료, 감염병 예방, 맞춤형 의료, 면역 조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바이러스의 기능을 폭넓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2022년에 커먼 펀드(Common Fund) 사업으로 미국의 5개 대학 및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휴먼 바이롬 프로그램(Human Viron Program, HVP)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커먼 펀드는 NIH가 대규모 의학 연구 및 혁신적인 연구 과제를 지원하기 위해 운영하는 특별 기금입니다. 이 기금은 특정 질병이나 기관에 국한되지 않고, 생명과학 및 의학 전반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학적 과제에 집중적으로 지원됩니다. 이 커먼 펀드의 탄생에는 NIH가 주도한 인간 유전자 프로젝트(Human Genom Project, HGP)의 성공이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NIH는 주도하는 HVP는 우리 몸 안에 질병을 일으키지 않고 존재하는 수많은 바이러스의 종류별 특성을 이해하고 이들이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바이러스 식별을 위한 새로운 시퀀싱 기술 개발과 새로운 바이러스 발견을 공유하고 비교할 수 있는 중앙 데이터베이스 확장입니다.
임상적으로 명백한 질병을 일으키는 비교적 소수의 바이러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연구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인간의 신체에 대한 상호작용과 영향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NIH는 최근 미생물학이나 분자생물학 분야의 기술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탐지 감도, 오염 제거, 확장성, 샘플 적합성 등 진행을 방해하는 중대한 도전 과제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고 밝히고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 네 가지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1. 생애 전반에 해당하는 장기간에 걸친 다양한 코호트에서의 인간 바이롬 특성화
2. 인간 바이롬을 실험하고 바이러스에 구분하여 명명하기 위한 도구, 모델, 방법의 개발
3. 인간 숙주와 바이롬 간의 상호작용을 밝히기 위한 기능적 연구 지원
4. 연구 컨소시엄의 중심축으로서 데이터 접근과 분석을 조정할 데이터 분석과 조정센터의 지원
NIH는 인간 바이롬 프로그램에 1억7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300억원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돈의 출처인 커먼 펀드는 통상 5~10년 안에 해결 가능한 연구 과제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 바이롬 프로그램도 머지않아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최근에 AI가 진화하면서 바이러스의 실체 규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하버드 공공보건 대학원의 계산 생물학(computational biologiy) 교수인 파르디스 사베티 박사는 바이러스 유전자의 미세한 특징을 발견하기 위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프로그램에는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밴더빌트 대학 메디컬 센터, UCLA, 애리조나 대학, 뉴욕의 슬론 케터링 기념 암 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