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김유정 기자] 탄핵 심판 국면에서 '옥중 정치'로 여론전을 이끌어온 윤석열씨가 석방과 동시에 '관저 정치'를 재개했습니다. 윤씨와 면담하기 위해 구치소로 향했던 여당 의원들은 다시 관저로 눈길을 돌리고 있습니다. 결국 탄핵 심판 선고를 눈앞에 둔 윤씨가 관저 정치를 통해 극우 세력에 대한 선전·선동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관저 '줄 세우기'…탄핵 선고 앞 '여론전'
국민의힘 '투톱'인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9일 저녁 관저를 찾아 윤씨와 30분가량 회동을 했다고 10일 신동욱 수석대변인이 전했습니다.
신 수석대변인은 "여러 가지 고려해서 30분 정도 식사는 아니고 차 한잔하면서 건강 문제라든지 대통령께서 수감생활을 하시면서 느낀 여러 소회 말씀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신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윤씨는 두 사람에게 "당을 잘 운영해 줘서 고맙다"라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 김건희 여사는 참석하지 않았고 세 사람만 만났다는 게 신 수석대변인의 설명입니다.
신 수석대변인은 누가 먼저 만남을 요청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석방된 첫날 아마 통화를 하셔서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찾아뵙겠다', '와라' 한 것 같다"며 "상식적으로 제가 느끼기엔 찾아뵙겠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습니다.
현재 윤씨는 석방 이후 별다른 공개 활동 없이 관저에 머물고 있습니다. 석방과는 별개로 국회의 탄핵 소추안 가결에 따라 직무 정지는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윤씨는 현직 대통령 신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국군통수권 △법률개정안 공포권 △공무원 임면권 △국무회의 소집 △부처 보고 청취 및 지시 등의 권한은 정지돼 있습니다.
석방으로 운신의 폭 자체는 넓어졌지만 일정한 제약이 불가피한 건데요. 대신 관저 정치가 본격적으로 재개되면서 탄핵 찬반에 대한 여론전에 힘을 실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윤씨의 체포 당일인 지난 1월 15일 국민의힘 의원 33명은 새벽부터 관저에 집결해 탄핵 반대와 구속 반대에 대한 여론전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당시 "불법 영장의 불법 체포"를 외치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범법 집단으로 내몰았습니다.
지난 2월 3일에는 권 비대위원장과 권 원내대표, 당내 중진인 나경원 의원이 서울 구치소를 찾았습니다. 권 비대위원장은 당시 옥중 정치에 대한 비판에 "메시지를 내고 옥중 정치를 하는 것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훨씬 더 많이 한다"고 반박했지만 탄핵 반대 집회는 더욱 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윤씨 역시 이번 석방 이후 여권 인사와 면담과 전화를 잇따라 이어가며 관저 정치를 사실상 재개했습니다. 게다가 지난 8일에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진과 저녁을 함께 했고, 9일에도 고위급 참모들과 오찬을 함께하는 등 관저 내 물밑 활동은 본격화한 모양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석방 사흘째인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좌파 시위대 침입 방지 및 대통령 복귀 기원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아스팔트 지지자' 치켜세운 윤…'광장 정치 '확대' 우려
윤씨의 관저 정치가 우려되는 지점은 '광장 정치'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단적인 예로 윤씨는 석방 결정 후 구치소에 모인 탄핵 반대 지지자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 인사했습니다. 또 관저 주변에 모인 인파를 향해서도 감사를 나타냈는데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씨는 측근들에게 "오늘의 윤석열을 만든 건 아스팔트 위의 지지자들 덕분 아니겠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또 윤씨는 "저의 구속과 관련돼 수감돼 있는 분들도 계신다"며 "조속히 석방되길 기도한다"고 밝혔습니다. 법원 난입·폭력 사태 수감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메시지입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찬반으로 국론이 분열됐음에도 국민통합에 대한 메시지는 없었습니다.
특히 윤씨를 현장에서 면담한 윤상현 의원은 '윤 대통령이 석방 후 적극적으로 공개 행보를 하면 탄핵 찬성·반대 세력 간 대립이 우려된다'는 기자의 지적에 "탄핵 선고 때까지 탄핵 심판의 불공정성, 위법성, 적법 절차를 어긴 것에 대해 많은 목소리가 나올 것이고 그런 목소리를 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피의자 윤석열의 귀가 메시지는 제2의 내란 선동"이라며 "대통령이 아니라 극우 세력의 골목대장 선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옥중에서도 경찰 인사에 대한 영향력을 미치며 사실상의 통치를 했다고 볼 수 있다"며 "권한대행의 비서실장 역할을 해야 할 정 비서실장이 윤씨의 비서실장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은 관저 정치의 방증"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김유정 기자 pyun979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