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상호관세 25% 부과가 현실화된 가운데 미국 에너지부(DOE)의 한국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 지정 문제도 단기간 해결을 보긴 어려울 전망입니다. 현재까지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나 지정 효력이 장기화될 경우 비공식적 불이익 등 한·미 협력 위축, 동맹 간 긴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특히 고농축 우라늄·플루토늄 독자 생산, 사용후핵연료 직접 재처리 등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논의에 부정적 영향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문제와 관련한 긴급 현안보고 및 질의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외교참사, 민감국가 발효 '15일'
3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목록은 공식적인 대외 비공개로 작성·관리하는 등 목록 구성과 등재·해제 기준·절차·갱신 시기에 대해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상국과의 사전협의나 통지 절차도 없어 목록 해제가 결정돼도 발효일 이전 가능할지, 발효 이후 미 에너지부의 절차에 따라 즉시 해제할지, 갱신주기에 맞춰 해제할지 등 예측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민감국가 지정 발효는 4월15일(현지시간)로 예정돼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미국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는 등 조속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 합의를 밝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오는 15일 발효 전 목록 해제를 목표로 미국 측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해제 가능성이나 지정 해제 시점은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981년 한국이 포함된 사례를 보면 상당한 시간과 외교적 협상이 요구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실제 해제까지 약 7개월이 소요되는 등 단기간에 해제가 이뤄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근 조셉윤 주한미국대사대리는 민감국가 명단에 오른 배경으로 민감 정보를 잘못 취급된 사례를 언급하며 크게 볼 사안은 아니라고 일축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정치권에서는 핵비확산 체제를 위협하는 무리한 정책 강행과 핵무기 개발 언급 등 외교참사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서왕진 조국혁신당 최고위원은 미 에너지부가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시킨 이유로 윤석열정부가 반복적으로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언급한 점을 꼬집은 바 있습니다.
김도희 입법조사처 외교안보팀 입법조사관은 "목록에는 미 우방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은 포함되지 않았으나 미 동맹인 이스라엘과 사실상 동맹관계에 있는 대만이 포함된 점을 고려하면 민감국가 지정은 단순 외교관계뿐만 아니라 기술적 신뢰성과 안보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전략적 결정으로 볼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에너지부 회의실에서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미국 에너지부 장관과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한·미, 과기 협력·원자력협정 개정 '부정적'
특히 민감국가 지정에 대한 대응이 부족할 경우 한·미 과학기술 협력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입법조사처 측의 진단입니다. 미 에너지부의 명시적 제한 외에도 국가 신뢰도 저하, 연구자 간 협력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이 협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미 대학이나 연구기관 소속 연구자가 한국 출신 유학생, 박사후연구원, 방문연구자 등을 선발할 때 민감국가 출신이라는 점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현재 민감국가 목록에 등재된 국가의 시민(대리인)에 대한 신원조회를 사전 완료하지 않으면 국가안보연구소 시설에 대한 출입을 허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연구 협력 위축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체코 원전 수출,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실증, 전력설비 업계의 미국 시장 진출 확대 등에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시선과 관련해서는 단기적 중대 영향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향후 사업 지속에 있어 미국과의 협력·신뢰 확보가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 판단입니다.
인공지능(AI) 분야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이나 지정 기간 동안 미 에너지부·산하 연구기관과의 협력(연구자 방문, 공동연구, 기술이전 등)에 내부 심사가 강화되고 다른 미국 연구기관들도 참고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비공식적 불이익 발생)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외교안보 분야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기대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여부입니다. 한·미 간 평화적 원자력 이용에 관한 협정으로 1956년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2015년 개정 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협정 유효기간은 20년입니다.
현행 한국은 해당 협정에 따라 미 동의 없이 고농축 우라늄·플루토늄을 독자 생산하거나 사용후핵연료를 직접 재처리할 수 없습니다. 반면, 일본은 1988년 개정된 미·일 원자력협정에 따라 미 동의 없이 핵연료로만 사용이 가능한 농도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을 자국 생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논의에 민감국가 지정 사유가 영향을 줄 경우 가능성은 더 낮아질 수 있다는 겁니다.
김 조사관은 "국내적으로는 국제 공동연구에 대한 보안 규정을 강화하고 국제협력 및 리스크 대응을 위한 상시적인 부처 간 협업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단일 해외 부처에 대해 국내 여러 부처가 대응해야 하는 구조인 경우 총괄 부처와 실무 부처를 명확히 구분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예를 들어 외교부 총괄 하에 각 부처가 소관 분야별로 상시적인 동향 파악과 소통 체계 운영"이라며 "국회도 한미 과학기술 협력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관련 주요 현안을 점검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등 의회 외교를 통한 협력 지원 등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도희 입법조사처 외교안보팀 입법조사관은 3일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던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에는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