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주 선임기자] 욕심날 법도 합니다. 대통령 선거일은 확정됐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무주공산입니다. 착각은 둘째 치고, 주인없는 산에 깃발만 꽂으면 ‘천하인’이 눈 앞에 있습니다.
하기사 ‘그 분’도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여의도 경력 하나없이 좋은 말로 나쁜 놈 잡아 벌주고, 험한 말로는 사람때려 잡던 양반이었죠. 시쳇말로 ‘어~어~’하더니 별의 순간을 잡아 ‘지존’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2021년 3월4일 검찰총장에서 스스로 물러나고, 11월5일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되고, 2022년 5월10일 대한민국 제 20대 대통령에 취임을 했으니, 1년 2개월만에 별이 된 겁니다.
어쩌면 용기 내 볼만 합니다. 바람만 잘 불어주면 못할 것도 없다. 저런 양반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소냐. 이게 요즘 국민의힘 대선후보에 뛰어든 예비주자들의 심정일 겁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뉴시스)
대통령 놀이 빠진 권한대행
국민에 지은 원죄를 씻기도 전에 두 달도 남지 않은 대선에 아귀다툼 벌이듯 서로 욕심 채우는 것은 그렇다 쳐도, 임용직 공무원이 선출 권력이 아님에도 ‘대통령 놀이’에 빠진 듯한 모습은 더욱 혀를 차게 만듭니다.
권한대행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공법에서 국가 기관이나 국가 기관의 구성원의 권한을 다른 국가 기관이나 국가 기관의 구성원이 대신 행사하는 일.
대통령 권한대행은 사전적으로 보면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일’로 규정할 수 있겠네요. 헌법 제71조에서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합니다.
국회의 줄탄핵으로 이 정부 들어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무총리에 이어 경제부총리까지로 이어졌다 다시 국무총리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되찾았습니다.
대통령 아니지만 대통령인듯한 이 직책은 적어도 6월4일까지는 지속됩니다. ‘대통령 놀이’를 할수 있는 기간이 두 달 정도 더 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설왕설래가 오가도 법적으로는 권한을 헌법에 따라 위임받아 행사할 수 있으니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인사권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2명을 제청했습니다. 권한을 물려받았다고 폭넓게 해석하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권한대행’이지 국민이 선출한, 국민이 부여한 권력의 위임을 받은 대통령은 아닙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보니 다음번에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도 힘듭니다. 이런 마당에 이유를 떠나 헌법재판소에서 판단을 받아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도 있지 않겠나 싶기도 합니다.
헌법재판소가 4월4일 오전 11시 22분 재판관 전원 의견 일치로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선고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만족함을 알면 그치기 바라노라
그런데 법도 법이지만, 상식도 살아가는 데 중요하지요. 사람마다 기준점으로 삼는 상식은 다르겠지만, 상식의 공통선의 총합체가 도덕입니다.
6월3일이 조기대선날입니다. 6월4일이면 국민의 선거로 뽑힌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선거를 통해 국민이 권력을 맡긴다는 겁니다.
선출권력은 아니라 엄밀한 비교잣대는 되지 않겠지만, 일반 기업의 일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현 사장은 사고를 쳐서 이미 물러났고, 부사장이 사장의 권한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장은 길어야 2달 안에 취임이 예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새 사장이 오면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부사장이 그냥 중요 임원 2명을 지명해 버립니다.
임원 가운데 한 명은 전임 사장이 친 사고에 이래나 저래나 발을 걸쳤다는 의혹도 받습니다. 그런데 부사장이 신임 사장이 오기 전에 임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하고 있네요.
이 정도면, 이건 그냥 기업 망하자는 겁니다. 전임 세력이 신세력을 인정않고, 새 사장 취임 이후에도 건건이 자기 지분 챙기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겁니다.
상식적으로는 이렇게 일처리 하지 않는 게 우리네 사는 방식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 신임 사장에게 권한을 몰아주는 게 상식이자 도덕입니다.
이런 사달을 보면서 노랫가락처럼 머릿 속에 계속 떠도는 말이 있습니다. 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면 그만 그치기를 바라노라. 수양제의 110만 대군을 살수에서 전멸시킨 고구려 장군 을지문덕이 수나라 총사령관 우중문에게 보낸 한시입니다.
1980년대 고등학교 문과생들이라면 고전문학 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내용입니다.
‘대통령 놀이’하시는 대행에게 그 때 그 한시 ‘여수장우중문시’(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내는 시)를 읇어 드릴까 합니다. 제목을 이렇게 바꿔도 요즘 분위기에선 무방할 듯 합니다. 이게 2차 고구려-수 전쟁때니까 612년입니다. 을지문덕 장군이 1410년 전에 현재 한국의 상황을 내다보고 시를 지은 게 아닐까도 싶습니다.
‘여대행한덕수시’(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에게 보내는 시)
그대의 귀신 같은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다 꿰뚫었고/신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통달했네/전쟁에 이겨 쌓은 공이 이미 높으니/만족함을 알고 그치기를 바라노라
오승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