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승주 선임기자] 윤석열씨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직 파면 선고 이후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론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윤석열 파면’을 엄중히 선고한 헌법재판소에 대한 존치를 비롯해 12·3 비상계엄 수사 과정에서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을 받은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도 개편론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헌재와 공수처 무용론을 주장하며 폐지를 거론합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순기능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법률적 미비를 보완해 효율적인 운영도 바람직하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월 4일 오전 11시22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씨 탄핵심판 선고기일에서 재판관 전원 의견 일치로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뉴시스)
탄핵과정 불거진 헌재 무용론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홍준표 대구시장은 헌법재판소 폐지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홍 시장은 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쟁과 갈등의 상징이 돼 버린 헌법재판소를 폐지하자"며 "대법관을 4명 증원해 대법원에 헌법재판부를 신설하자"고 말했습니다.
헌재가 정치적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고, 정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헌재 무용론'을 꺼내 든 겁니다.
헌재 무용론은 윤씨 탄핵 심판 과정에서 여야를 불구하고 ‘자신의 입맛’에 따라 불거졌습니다. 탄핵 선고가 늦어지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폐지론’을 들먹이며 공세를 펼쳤습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헌재 무용론에 열을 올렸습니다. 윤씨에 대한 탄핵심판 변론이 진행되는 동안 여당 의원들은 헌재가 편향적인 변론을 하고 있다며 거센 공세를 펼쳤습니다. 야당인 민주당도 윤씨의 탄핵심판 선고기일이 차일피일 늦춰지자 ‘존재 이유’까지 운운하며 헌재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헌재는 양측의 협공을 받으며 속칭 ‘동네북’ 신세로 전락하며 헌법수호의 최전선 기관이라는 자존심까지 상처를 받아야 했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헌재를 폐지하거나 대법원 등으로 기능을 옮겨 재배치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헌재는 헌법에 따라 설치된 ‘헌법기관’입니다. 다시 말해 헌법개정, 즉 개헌을 통해 헌재의 위치를 확인해야만 존폐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헌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현행 ‘87년 헌법’의 산물입니다. 1948년에 제정된 제헌 헌법(제81조)에서는 헌법위원회를 뒀습니다. 위헌법률 심판권만 갖고 있었고, 탄핵은 국회의 탄핵재판소에서 담당했습니다.
이후 헌법이 개정될 때도 헌재의 위상은 전무하다피 했습니다. 그러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한 현행 헌법 제정 과정에서 헌법재판을 전담할 헌법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돼 신설됐습니다. 제대로 된 위상을 갖춘 것은 현행 제6공화국 헌법 때입니다.
현행 헌법에서는 ‘제6장’에 헌법재판소를 분류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111조에 따르면 크게 5가지를 관장합니다.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 △탄핵의 심판 △3. 정당의 해산 심판 △국가기관 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입니다.
세상이 조용할 땐 헌재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십수년 사이 정쟁이 격화됐고 특히 탄핵소추안이 남발되면서 헌재의 위상도 덩달아 높아지고 주목도가 올라간 겁니다.
헌재 무용론이 정당 사이에서 불거지지만, 쉽게 역할을 떠맡기도 어렵습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1987년 헌법 이후 태동해 근 40년을 이어오면서 쌓인 헌재의 판결과 사회조정 기능이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개헌이 이뤄진다면 분명 거론되겠지만, 역사를 거치며 쌓은 노하우 등을 고려하면 대체할 기관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공수처 모습. (사진=뉴시스)
공수처에 쏟아진 비난
공수처 무용론도 거세질 전망입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이후 윤씨 체포와 수사 과정에서 숱한 허점과 법적 공백을 드러내 빈축을 샀습니다. 윤씨에 대한 1차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하고, 2차 체포영장 집행 이후엔 윤씨의 진술거부권 행사에 막혀 수사를 진행하지 못한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윤씨 탄핵 과정에서 공수처에 대한 비난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빗발처럼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공수처 탄생과정을 보면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입니다.
문재인정부는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공수처를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검찰개혁의 명분에만 물도, 수사권 문제와 형사법 체계의 뒤엉킴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지적이 중론입니다.
일각에서는 공수처 폐지에 목소리를 높이지만, 검찰 권력의 견제를 위해서라도 공수처 폐지는 섣부르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 못한 비상계엄 아래서 공수처의 한계가 드러나 개정 방향을 제대로 알게 됐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습니다.
서초동의 한 관계자는 “공수처는 검찰 권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폐지론보다 검찰과 관계 등을 고려해 제대로 된 공수처법을 개정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승주 선임기자 seoultub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