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보험업권에서 책임경영 강화를 위한 책무구조도 시범운영이 시작되면서 '거수기'로 지적돼 온 이사회 구조가 바뀔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금융당국은 책무구조도를 제출한 보험사들을 대상으로 오는 7월까지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제도 정착을 유도한다는 방침입니다.
겸직 해소·책무 분산…이사회 실질화 첫발
책무구조도는 대표이사(CEO)를 포함한 주요 임원들의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 책임을 명시한 문서로,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금융당국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겸직 해소, 임원 간 책무 분산, 내부통제위원회 설치 여부 등을 핵심 점검 항목으로 제시했습니다.
보험업계는 제도가 형식에 그치지 않고 이사회의 실질적 기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습니다. '경영 효율성'을 이유로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해온 구조는 여전히 남아 있는데요.
현재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여승주 한화생명 부회장·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등도 의장직을 겸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사회가 경영진의 안건을 추인하는 데 그쳤다는 비판이 반복돼 왔습니다.
일부 보험사는 사외이사를 의장에 앉히기도 하지만 의사결정 권한이 실질적으로 경영진에 집중된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대표이사와 의장직을 겸하는 구조에서는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융당국은 시범운영 기간 중 책무 배분의 적정성과 중복 여부를 점검하고 참여 보험사에 컨설팅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이 기간에는 지배구조법 위반에 따른 제재를 면제하거나 감경하는 인센티브도 적용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사회, 실질적 책임 주체로 바뀔까
제도의 실효성을 좌우할 핵심은 이사회가 실질적인 책임 주체로 전환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이사회 의장을 겸하는 오너 체제뿐 아니라, 현재 구조 전반에서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책무구조도는 이사회의 책임 범위를 넓히는 구조로 설계돼 있습니다. 상위 임원 간 책무가 분산되면 대표이사 외 이사도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가 되기 때문에 단순히 안건을 통과시키는 구조에서 벗어나 소신 있는 논의와 의결이 가능해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이와 함께 금융감독원은 내부통제위원회 설치 여부도 점검 항목에 포함했습니다. 내부통제위원회는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등으로 구성돼, 내부통제 시스템의 적정성과 리스크 대응체계를 이사회에 보고하고 사전에 검토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특히 사고 발생 전 내부통제 체계를 점검하고 사고 발생 시 이사회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단순한 점검 기구를 넘어 사고 발생 시 이사회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내부통제 문제가 발생하면 이사회 구성원들도 실질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게 되는 만큼, 만장일치 찬성에 익숙했던 이사회 관행에 제동을 거는 효과가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이사회 내부에 실질적인 자기점검 기능과 사전 견제 역할이 작동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범운영은 단순한 서류 점검에 그치지 않고 이사회 운영 전반에 실질적인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책무구조도 표준안을 제시하고 향후 법제화 여부도 검토할 방침입니다.
일부 보험사는 제도 시행에 앞서 사외이사 신규 선임이나 내부통제 조직 개편 등 이사회 운영 방식에 변화를 주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존 감사위원회 외에 별도 내부통제위원회 구성을 검토하거나, 외부 전문가를 이사회에 합류시키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이사에게 실질적인 책임이 주어진다는 건 단순한 문서 절차를 넘어선 변화"라며 "책임은 늘고 권한은 그대로라면 이사회 참여를 기피하는 정서도 생길 수 있어 제도 안착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