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확정금리 상품 실종…보험계약대출 활황

기준금리 인하 기대 약해지며 확정금리 신상품 전무
대출 규제 속 기존 계약자 대상 보험계약대출 수요 확대
우대금리 허용되며 보험사 간 '불황형 대출' 경쟁 심화

입력 : 2025-12-23 오후 2:56:46
[뉴스토마토 윤민영 기자] 보험사들의 확정금리 신상품이 올해 하반기 들어 사실상 자취를 감췄습니다.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화할 것이란 기대가 약해지면서 장기간 금리를 확정해주는 상품을 새로 설계할 유인이 줄어든 영향입니다.
 
반면 금융권 전반의 대출 문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보험계약대출은 다시 활황입니다. 기존 계약자를 대상으로 한 보험계약대출은 우대금리 적용이 가능해지면서 경쟁력이 생겼습니다. 보험사 입장에선 조달 부담과 역마진 우려를 감수하고라도 ‘불황형 대출’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확정금리 상품, 상반기 이후 신상품 사실상 전무
 
확정금리형 보험상품은 금리 인하기에 주로 등장합니다. 기준금리가 낮아질수록 은행 예·적금의 매력이 떨어지고, 일정 수준의 금리를 보장하는 상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보험사들은 과거에도 기준금리 인하 국면에서 확정금리형 저축성·연금성 상품을 잇따라 선보여왔습니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에는 이런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이후 새로운 확정금리형 상품 출시는 사실상 전무합니다. 기존 상품의 조건을 유지하거나 판매를 연장하는 사례는 있으나, 구조를 새로 설계한 신상품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금리 인하가 본격화한 지난해만 해도 투자의 성격을 갖고 있어 적립금 변동성이 큰 변액보험의 경우도 최저보증이율을 보장한 상품이 많이 출시됐습니다. 만기가 1년 미만 짧은 저축성 보험을 고금리로 판매하는 이벤트성 상품도 많았습니다.
 
이는 기준금리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기준금리는 2021년 8월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2023년 1월부터 2024년 8월까지 3.50%로 장기간 동결됐습니다. 이후 인하 기조로 전환되긴 했지만, 속도는 빠르지 않았습니다. 기준금리는 올해 5월 이후 2.50% 수준에서 다시 동결된 상태입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정금리를 장기간 보장하는 상품을 새로 출시하는 것이 부담입니다. 확정금리 상품은 향후 금리 변동과 관계없이 일정 이율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금리 방향성이 불확실할수록 자산·부채 관리 부담이 커집니다. 금리 인하기에 다수의 계약을 유치할 수 있지만, 금리가 계속 내려가거나 투자 수익이 줄어도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최소 금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확정금리 신상품 출시는 자연스럽게 위축된 모습입니다.
 
실제로 보험사 내부에서도 확정금리 상품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금리 인하가 분명한 흐름으로 자리 잡기 전까지는 기존 상품 관리에 집중하겠다는 기류가 읽힙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확정금리형 상품이 많으면 손익 하락 영향이 있지만 부채 이자도 감소하기 때문에 손익이 상승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차피 장기적으로는 기준금리 인하 기조이기 때문에 확정금리가 큰 경쟁력을 갖추긴 힘들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대출 막히자 몰리는 보험계약대출…불황형 대출 성격 뚜렷
 
확정금리 상품과는 다른 흐름에서 보험계약대출은 활황을 보이고 있습니다. 보험계약대출은 보험 가입자가 해약환급금 범위 내에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제도로, 별도의 신용평가나 소득 심사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최근 보험계약대출 이용 규모는 다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보험계약대출 잔액은 70조원으로 전분기 대비 3000억원 늘었습니다. 전체 가계대출(133조3000억원) 가운데 52.5%를 차지해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금융당국은 이를 정부의 부동산 대출 규제 영향으로 보고 있습니다. 은행·카드사·저축은행 등에서 대출 심사가 강화되고 금리 부담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은 보험계약대출로 수요가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금리 측면에서도 보험계약대출의 경쟁력은 강화되는 모습입니다. 생명보험협회 공시에 따르면 금리연동형 보험계약대출 평균금리는 이날 기준 가산금리 1.5%를 더한 4.97%입니다. 기준금리 동결이 본격화한 6월(5.12%) 대비 0.15%포인트 낮아졌습니다. 이 기간 5.0%~8.0% 미만 중금리 대출 수요는 37.3%에서 41.4%로 4.1%가 늘었습니다.
 
보험계약대출은 경기 둔화 국면에서 이용이 늘어나는 대표적인 '불황형 대출'로 분류됩니다. 자금 사정이 어려워진 계약자들이 보험을 해지해 보장을 포기하기보다는, 기존 계약을 유지한 채 대출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선택을 하기 때문입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기존 계약자를 대상으로 별도의 신용평가나 추가 서류 없이 대출을 제공할 수 있어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절차가 간편한 데다 계약 유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객 관리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달 들어 보험계약대출에도 우대금리 적용이 가능해지면서 보험사 간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다만 이로 인해 보험계약대출이 확대될수록 부담은 커집니다. 대출금리를 낮게 유지할 경우 보험사의 조달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고, 시장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되면 역마진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계약자들의 대출 수요가 특정 시기에 집중될 경우 유동성 관리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은행 내 대출 창구. (사진=뉴시스)
 
윤민영 기자 min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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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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