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와 탐사보도)①에밀 졸라의 시간: 분노 축적의 법칙

독전(Dog傳)…이규연 탐사저널리스트

입력 : 2025-04-16 오전 6:00:00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등이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기일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25년 4월4일.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됐다.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이번에도 재판관 전원이 피고인 윤석열의 파면에 동의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세월호 참사 부실 대응, 기업체 모금 강요 등 여러 가지였다. 반면 윤 전 대통령의 사유는 계엄 선포 중심이어서 더 단순하지만 훨씬 중한 혐의였다. 그래서인지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피고인 박근혜 파면 때보다 더 명백하고 단호하며, 여지가 없어 보였다. 
 
결정 당일, 헌법재판소 부근은 진공상태가 됐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경찰의 조치였다. 드높은 버스 차벽도 곳곳에 설치됐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때보다 더 삼엄하고 비장했다. 극우 세력의 언행이 8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칠었기 때문이다. 전원 일치로 탄핵이 인용되는 순간, 탄성과 울음이 초봄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헌법재판소 부근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安國)역의 장소성은 너무나 아이러니했다. 세상을 편하게 하는 것이 국정 책임자의 기본 역할인데, 울부짖고 탄식하는 노인들보다, 폭력을 쓰는 청년들보다 그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린 대통령이 더 원망스러웠다. 한때 국민의 검사로 추앙받던 윤석열 전 대통령. 그는 어떻게 이 지경까지 떨어졌을까.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순간, 불현듯 에밀 졸라의 시간과 분노 축적의 법칙이 생각났다.
 
진실과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싸웠던 소설가 에밀 졸라. 『목로주점』 같은 당대 베스트셀러를 썼던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만이 아닌, 현실에서 행동했던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다. 그의 저널리스트로서의 용기는 드레퓌스 사건에서 발휘된다. 1894년 유대인 출신 드레퓌스 대위가 적대국 독일에 기밀을 빼돌렸다는 게이트가 터진다. 젊은 대위를 감옥으로 내몬 세력은 극단주의에 심취한 군부 엘리트였다. 유력한 용의자가 따로 있는데도, 드레퓌스는 종신형 판결을 받고 남미 프랑스령 '악마의 섬'으로 유배된다. 이에 분노한 에밀 졸라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1898년 1월에 한 신문에 싣는다. 신문의 헤드라인은 이랬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정문에서 퇴거하며 지지자들을 만난 뒤 돌아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는 군부의 부도덕성과 이중성을 질타하고 프랑스 사회의 부패와 함께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한다. 글은 강력한 공분을 유발했다. 프랑스 사회를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나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졸라는 군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는다. 여기서 졸라의 또 다른 명언을 인용해본다. 
 
'진실은 행진하며,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다.' 
 
멈추지 않는 분노의 행진에, 결국 재심이 청구되고 1906년 드레퓌스는 무죄를 선고받는다. 에밀 졸라는 그의 무죄를 보지 못하고 사망한다. 그의 행동하는 정의는 프랑스의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하고 반이성적 집단주의에 큰 경종을 울렸다. 이쯤에서 또 다른 그의 명언을 인용해본다. 
 
'진실에 입을 다물고 그것을 땅 아래 묻으면, 진실은 거기서 자라난다.' 
 
에밀 졸라의 기고문 「나는 고발한다」는 당시 프랑스 엘리트 계층이 감추려 했던 치부를 정면으로 고발했다. 군부 엘리트는 그의 입과 글을 막고 권력으로 은폐하려 했다. 땅속에 묻힌 진실은 분노를 축적하며 더 크게 자라나 폭발했다. 
 
집권 초기, 윤석열정부는 강건해 보였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스타 검사, 검찰총장 출신이었다. 검찰 특수통이 정부 요직에 배치됐다. 검찰이 주도하는 언론계 수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일부 비판 언론에 대해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굴레를 씌웠다. 윤 대통령 자신과 김건희 여부를 둘러싼 숫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권력은 불거진 의혹을 땅에 묻으려 했다. 박근혜정권보다 더 노골적인 진상조사 거부와 사과 회피는 더 짧은 시간 내에 '분노의 축적'을 몰고 왔다. 
 
하지만 <TV조선>-<한겨레>-<JTBC>라는 세 레거시 언론이 탄핵을 주도했던 2016년 때와 달리, 윤석열 정부 때는 <뉴스토마토>-<뉴스타파>-<서울의소리> 같은 비(非)레거시 언론의 탐사보도가 윤 정부와 대결했다. 적어도 2024년 총선 때 여당이 참패하고 레거시 언론이 비판의 각을 세우기 전까지 그랬다. 
 
서구 사회에선 심심치 않게 언론을 개(Dog)에 비유한다. 'Lapdog'은 무릎에 앉은 애완견처럼 특정 집단에 순종하는 언론을, 'Guard dog'은 언론이 권력을 보호하는 경비견 역할을 할 때 쓰인다. 반면 언론이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공격하는 투견 역할을 할 때 'Attack dog'이라고 한다.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지나치게 공격하는 언론은 'Rabid dog'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표현으로 감시견을 뜻하는 'Watchdog'이 있다. 정부나 기업의 부패, 비윤리적인 행동을 감시하고 폭로하는 역할을 하는 언론이다. 필자는 이런 워치독의 정신을 받아들여, 'Dog傳'을 연재 제목으로 쓰려 한다. 
 
연재는 2021년에서 2024년까지 벌어졌던 권력 감시형 탐사보도의 취재 과정과 워치독의 고뇌를 담는다. 그들은 어떻게 고발하고 분노를 만들어내며, 그리고 이를 어떻게 확산시켰을까. 철옹성 같았던 윤석열정부와 비레거시 탐사보도의 본격 대결이 다음 회부터 이어진다. 
 
이규연 탐사저널리스트(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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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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