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배경도 모른 채…미, 한국 '민감국가' 끝내 발효

미 적대국가 '북·중·러'와 유사 선상…수출입·경제 등 후폭풍

입력 : 2025-04-15 오후 4:57:11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현 정부의 외교 참사가 현실이 됐습니다. 미국이 끝내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목록'(SCL)에 포함시킨 겁니다. 지정 배경도 모른 채 북한·중국·러시아·이란과 유사한 선상에 놓인 셈입니다.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지만 민감국가 지정 해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한·미 사이의 인공지능(AI)·원자력 분야 협력은 물론 수출입과 기업활동 등에도 제약이 불가피합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안일한 대응의 참사"…해제도 '불투명'
 
15일(현지시간)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 상에 '기타 지정 국가'로 추가한 미국 에너지부(DOE) 조치가 발효됐습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국가안보와 핵 비확산, 테러 지원 등의 우려를 이유로 민감국가를 설정하는데요. 민감국가 리스트에 오른 나라와는 연구협력과 기술 공유 등에 제한을 둡니다. 
 
민감국가 리스트는 에너지부 산하 미국 정보방첩국(OICI)과 미국 국가핵안보국(NNSA) 등이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미국이 민감국가로 지정하고 있는 국가는 약 25개국인데요. 북한과 이란은 '테러지원국'으로, 중국과 러시아 등은 '위험국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미국과 적대 관계인 국가들입니다.
 
한국이 기타 지정 국가에 오른 건 비록 낮은 단계이기는 하지만 전임 정부인 조 바이든 행정부의 조치라는 점은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윤석열정부는 임기 내내 바이든 정부와 한·미 동맹 강화에 초점을 맞췄는데, 민감국가로 지정된 겁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외교부는 "미측을 접촉한 결과, 미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 최하위 단계에 포함시킨 것은 외교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일회성 보안 사고가 민감국가 지정 원인이 됐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때문에 외교가에서는 보수 진영의 '핵 자강론'을 원인으로 꼽습니다.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한국이 민감국가로 지정됐다 해제된 바 있습니다. 당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체 핵무장론이 대두되고, 12.12 쿠데타 등의 정치·사회적 혼란이 가중됐던 시기입니다. 12·3 비상계엄과 핵 자강론이 대두된 현재의 상황과 유사합니다. 
 
문제는 한 번 지정된 민감국가의 해제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1981년 민감국가 지정 당시 핵 문제가 거론됐는데요. 1993년 우리 정부는 미국에 민감국가 해제를 요구했습니다. 이는 힘겨운 협상 과정을 거쳤고, 7개월가량의 협상을 통해 1994년에 해제됐습니다. 
 
이번 해제 요구 역시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모양새입니다. 지난 8일 한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를 '성공적'이라고 평가했지만 민감국가 지정 해제에 실패했습니다.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미국 측과 접촉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정부는 민감국가 지정 사실조차 언론을 통해 알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야권에서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과 대처가 불러온 참사"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한·미 협력 차질 '불가피'…관세 협상카드 '우려'
 
우리 정부는 민감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하기 위한 논의를 지속하겠다면서도 미국과의 과학기술·산업 협력에는 차질이 없을 거라며 진화하고 있습니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양국 간 국장급 실무협의에서 미 에너지부 측은 민감국가 지정이 현재 진행 중이나 향후 추진하는 한·미 연구·개발(R&D) 협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재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정부 측 설명과 달리 AI·원자력 분야 협력은 물론 수출입과 기업활동 등에도 후폭풍이 예고됩니다. 민감국가 지정 효력 발효에 따라 한국 출신 연구자는 미국 연구소를 방문하기 최소 45일 전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별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 에너지부 직원이나 소속 연구자가 한국을 방문할 때도 추가 보안 절차가 적용됩니다.
 
특히 미국이 동맹국 관계에도 민감국가로 한국을 지정한 건 국가 신뢰도와 국가 신용등급 하락의 단초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수출 제한 품목에 전략 자산이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또 민감국가 리스트에 장기간 오르게 되면 국가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이 미쳐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미 에너지부 민감국가 지정,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보고서에서 "만약 민감국가 지정 해제를 위한 한미 간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거나, 지정 사유 해소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지정 상태가 장기화한다면 궁극적으로 양국 간 신뢰 문제로 비화돼 동맹관계에 긴장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에 있어 민감국가 해제가 한·미 협상에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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