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벤처강국'이 말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입력 : 2025-06-18 오전 6:00:00
이재명정부가 내세운 '벤처강국' 공약은 단순한 창업 붐 조성을 넘어선다. 대기업 중심의 경직된 산업구조를 창의와 혁신이 주도하는 역동적 경제로 재편하겠다는 전략적 구상이다. 저성장 고착화, 소득 양극화, 청년 일자리 부족 등 한국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난제의 해법을 벤처 생태계에서 찾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우리는 이미 2000년대 초 벤처 1세대 붐을 경험했다. 하지만 당시 정책은 보증과 대출 중심의 자금 공급에만 매몰됐고, 생태계 전반의 질적 성숙은 외면했다. 그 결과, 다수의 창업 기업이 2~3년 내 문을 닫았고 부실한 회수 시장 탓에 투자 선순환 구조는 작동하지 않았다. '한 번 실패하면 끝'이라는 사회적 낙인은 도전 의지마저 꺾어놓았다. 
 
물론 지금의 벤처 생태계는 20여 년 전과는 다르다. 모태펀드가 자리 잡았고, 민간 벤처캐피털이 늘었으며, 유니콘 기업도 등장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병목은 여전하다. 초기 자금은 부족하고, 성장기 기업들은 '죽음의 계곡'에서 허덕인다. 무엇보다 회수 시장이 취약하다. 기업공개(IPO) 말고는 마땅한 출구가 없으니 투자자들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벤처강국 구상이 성공하려면 과거와는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정책 거버넌스를 정비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들이 제각기 정책을 추진하는 구조에서는 일관성과 실행력을 담보하기 어렵다. 컨트롤타워 구축을 통해 정책 시너지를 만들어야 한다.
 
정책금융의 방향 전환도 필수다. 기존의 대출·보증 중심 지원에서 지분투자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정부가 민간과 공동 투자자로 참여하고, 이를 통해 민간 자본의 유입과 후속 투자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위험을 분담하면서도 시장 친화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회수 시장의 다변화가 절실하다. IPO 중심 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전략적 인수합병(M&A) 활성화, 세컨더리 펀드 육성, 해외 상장 지원 등 다양한 엑시트 경로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투자자는 회수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자금을 집행한다. 이 확신이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고, 결국 생태계의 선순환을 만든다.
 
문화적 토양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실패를 용인하고 도전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야 창의적 인재들이 창업 생태계를 선택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진정한 힘은 기술이나 자본이 아니라 실패한 창업가를 경험 많은 투자자로 보는 문화에서 나온다.
 
벤처강국 공약은 단순한 창업 지원 정책이 아니다. 우리 경제의 DNA를 바꾸겠다는 국가 전략이다. 새 정부가 이 공약을 체질 개선의 출발점으로 삼고 중장기적 로드맵을 가지고 실행에 나서야 할 때다. 이 구상이 말잔치로 끝날지 국가 전략으로 진화할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벤처 현장은 정부의 진정성을 기다리고 있다.
 
오승주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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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B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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