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대구가 작아졌어요"…인간이 물고기의 유전자를 바꿔놓았다

인간의 남획이 동발트해 대구의 유전체에 측정 가능한 흔적 남겨

입력 : 2025-07-01 오전 9:57:40
한귀영 박사가 작은 대구 한 마리를 들고 있다. 한때는 거대한 어종이었지만, 오늘날의 성체는 두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다. 대구의 '소형화'와 개체 수 감소는 수십 년에 걸친 집중 어획과 환경 변화가 맞물린 결과다. (사진=GEOMAR)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1990년대 중반까지 동발트해(Eastern Baltic Sea)의 대구(Eastern Baltic cod, Gadus morhua)는 길이 40cm 전후, 무게 약 1.3kg 크기의 성체가 흔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포획되는 대구들은 길이가 절반 수준(약 20cm), 무게는 300g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구 남획은 단지 개체 수가 줄어드는 데 그치지 않고 유전물질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 발표되었습니다. 
 
독일 킬에 있는 지오마르 헬름홀츠 해양연구센터(GEOMAR, Helmholtz Zentrum für Ozeanforschung) 연구진은 대구의 성장 속도가 뚜렷하게 느려졌음을 처음으로 입증했으며, 이 변화가 어류의 유전체에도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인간의 어획 활동이 유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종의 진화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c Advances)에 발표되었습니다. 
 
한때의 대형 어종이 이제는 잔챙이로
 
대구는 한때 발트해의 거대 어종이었습니다. 풍부한 개체 수와 함께 가장 큰 것은 1m가 넘는 체장에 40kg에 달하는 무게를 자랑하며 청어와 더불어 발트해의 대표적 식용 어종으로 북유럽인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구는 성체라고 해도 접시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습니다. 2019년부터 어획이 전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발트해의 대구를 맛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처럼 대구가 작아진 현상은 개체 수 감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향에 기인한 것입니다. GEOMAR 연구진은 수십 년간 지속된 집중 어획과 환경 변화가 물고기의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습니다. 
 
유전자에 새겨진 인간의 흔적
 
“선택적인 과도한 어획이 동발트해 대구의 유전체를 바꾸었습니다.” 이 논문의 제1저자인 한귀영(Kwi Young Han)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GEOMAR의 해양 진화생태학 연구 그룹에서 해당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평균 체장이 줄어든 것이 성장 속도의 감소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고, 유전자 수준에서도 어획 압력이 진화적 반응을 유도했음을 처음으로 입증했습니다.” 
 
연구팀은 성장과 관련된 특정 유전자 변이들을 확인했으며, 이 변이들이 시간에 따라 계통적(비우연적)으로 변해가는 선택의 흔적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유전자 영역들은 성장과 생식에 관여하는 유전 부위와 뚜렷하게 중첩되었으며, 염색체의 일부 DNA 구간이 잘려 나갔다가 뒤집힌 상태로 다시 제자리에 붙는 역위(inversion), 즉 구조적 돌연변이 또한 환경 적응과 관련된 선택 과정의 일부로 나타났습니다. 
 
요약하면, 대구의 ‘소형화’ 현상은 유전적으로 증명되었고, 그 변화의 주체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느리게 자라는 대구는 살아남아
 
연구팀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특이한 생물학적 기록물을 사용했습니다. 바로 1996년부터 2019년 사이, 동발트해 보른홀름 해분(Bornholm basin) 에서 잡힌 대구 152마리의 이석(耳石)입니다. 물고기의 이석은 나이테처럼 고리 형태로 성장해 나이와 성장률을 추적할 수 있는 귀중한 생물학적 기록 장치입니다. 
 
이 표본은 GEOMAR의 장기 생태 모니터링 프로그램(Baltic Sea Integrative Long-Term Data Series) 일환으로 수집된 것이며, 이는 동발트해 대구 개체군 붕괴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전적 시간 여행’을 가능케 했습니다. 
 
연구팀은 이석의 화학 분석과 고해상도 DNA 시퀀싱 기술을 결합해, 25년 동안 대구의 성장 방식과 유전 구성이 어획 압력 아래에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느리게 자라는 개체와 빠르게 자라는 개체 사이에 유전체 상으로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빠르게 자라는 개체가 거의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즉, 느리게 자라고 작은 체형에서도 번식이 가능한 대구가 인간의 어획이라는 환경적 압력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의미입니다. GEOMAR 해양생태학부 책임자이자 한귀영 박사의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토르스텐 로이슈(Thorsten Reusch)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수년간 가장 큰 개체만 계속 잡았기 때문에 그보다 작은 개체들이 진화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야기한 진화 현상, 즉 ‘어획에 의한 선택’입니다. 과학적으로는 매우 흥미롭지만 생태학적으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죠.” 
 
회복되지 않는 개체군: 유전 다양성의 상실
 
대구 남획이라는 선택 압력(selection pressure)으로 지금 동발트해 대구 어군 대부분은 일찍 번식하는 작고 젊은 개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법적으로 그물코의 크기를 제한해 어린 개체는 살려두도록 했지만, 결과는 작게 자라는 개체들이 살아남아 번성하는 선택 압력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작은 대구는 성숙해도 알이나 정자 수 등 번식력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결과적으로 개체 수 회복이 어렵고,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어 기후나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도 약화됩니다. 2019년부터 어획을 전면 금지했지만 개체수는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발트해의 대구는 생태계 속에서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라, 인간 활동이 진화 과정에 끼친 영향을 유전체 수준에서 드러낸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오랜 어획으로 빠르게 사라진 것은 개체 수만이 아니라 크게 자라는 유전자의 빈도였고, 살아남은 것은 작지만 빠르게 성숙하는 형질을 가진 유전자였습니다. 그 결과 짧은 수명, 낮은 번식력, 낮은 적응력의 집단이 남았습니다. 
 
한귀영 박사는 “우리 연구는 인간이 야생 개체군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깊고 근본적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영향은 유전체 수준까지 미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지속 가능한 어업이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서 생물다양성 보존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생물다양성이란, 단지 눈에 보이는 물고기 개체 수가 아니라 ‘유전적 자원’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대서양 대구가 남획되던 1950년대의 모습. 세계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해양 어류의 3분의1 이상이 인간의 소비를 위해 남획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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