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퍼 착시(Coffer Illusion). 위 격자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 보세요. 일련의 사각형이 먼저 보입니까? 아니면 원이 먼저 보입니까? 최근 발표된 프리프린트 논문은 ‘커퍼 착시(Coffer illusion)’로 알려진 이 시각적 착시를 인지하는 방식이 환경과 관련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이미지=Anthony Norcia/CC BY-NC-ND)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괴테는 자연을 관찰할 때 관찰자의 마음과 지식이 영향을 미친다고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그의 이런 생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발언은 “사람은 자신이 이미 알고 이해하는 것만을 본다(Man erblickt nur, was man schon weiß und versteht)”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 경험, 관심에 따라 자연을 다르게 본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는 우리가 보고 시각을 통해 인식하는 것은 환경과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착시 이미지를 종종 접합니다. 같은 길이의 선이 한쪽이 더 길어 보이고, 평행선이 기울어져 보이며, 단순한 패턴이 복잡하게 왜곡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미지 말입니다. 이런 착시는 단순한 시각적 장난이 아니라, 인간 지각의 특성과 그 차이를 탐구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연구 “착시는 시각적 인식에서 문화 간 차이의 폭넓은 다양성을 드러낸다(Visual illusions reveal wide range of cross-cultural differences in visual perception)”는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이 연구는 뉴욕 시립대학교(CUNY) 심리학자 막심 크루핀(Maxim Kroupin)이 주도했으며,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인류학자 헬렌 E. 데이비스(Helen E. Davis) 등이 공동 저자로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착시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와 환경이 우리의 시각 지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프리프린트(preprint) 형태로 발표되었으며, 현재 동료 평가가 진행 중입니다.
문화와 환경이 다른 세 집단을 대상으로 조사
연구팀은 세 지역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착시 이미지를 보여주고 반응을 기록했습니다. 첫 번째는 선진 서구 문명을 대표하는 미국과 영국 참가자들로, 이들은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착시에 대한 반응을 제출했습니다. 다음은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유목민인 힘바(Himba) 부족 사람들로, 연구팀은 현지를 방문해 직접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막심 크루핀과 헬렌 데이비스는 나미비아 현지에서 사람들에게 이미지를 보여주고 반응을 수집했습니다. 세 번째 조사 대상은 나미비아의 준도시 지역 주민들로, 이들은 도시화와 전통적 환경의 중간에 위치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집단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총 6개의 대표적 착시 그림을 보게 되었고, 각 그림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인지했는지 또는 어떤 방식으로 그림을 해석했는지 답변했습니다.
코퍼 착시에 대해 네 가지 응답 유형 중 하나로 반응한 참가자들의 비율(영국/미국, 힘바족 준도시 지역, 힘바족 전통 마을 순). 왼쪽에서 오른쪽 순으로: 사각형만 봄, 사각형을 먼저 보고 그다음 원을 봄, 원을 먼저 보고 그다음 사각형을 봄, 원만 봄.(이미지=CUNY)
사는 곳이 다르면 눈이 달라진다?
조사 결과, 착시 그림에 대한 반응이 주거 환경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극명하게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6개 착시 이미지 가운데 4개에서, 힘바족 사람들은 미국과 영국 참가자들과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지그재그처럼 보이는 물결 모양 선이나 기울어져 보이는 평행선 그림에서, 서구 참가자들은 대부분 착시에 속아 그림을 왜곡되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힘바족 사람들은 선을 있는 그대로 보았으며, 착시 효과를 유발하는 패턴이나 음영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준도시 지역 사람들은 두 그룹의 중간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는 도시화 정도, 서구적 환경에의 노출 정도가 시각 지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특히 ‘코퍼 착시(Coffer illusion)’에서 두드러진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이 그림은 사각형과 원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관찰자에 따라 어느 쪽 도형이 먼저 눈에 띄는지가 달라집니다. 미국과 영국 참가자의 97%는 사각형을 먼저 인지했습니다. 반면 힘바 마을 사람들의 96%는 원을 먼저 보았습니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문화적 배경이 시각적 주의를 어디에 둘지 크게 달라지게 만든 것입니다.
환경과 일상적 경험이 시각적 인식 차이의 원인?
이 연구는 착시의 작동 기제 자체나 문화가 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직접적으로 밝혀내지는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은 그러나 환경과 일상적 경험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었을 가능성을 강조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같은 선진 사회 사람들은 직선과 각이 많은 건축물, 도로, 문서, 기계와 같은 인공적 환경에 익숙합니다. 이 때문에 직선과 각에 더욱 민감해지고, 그런 요소를 강조하는 착시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자연 환경에서 살아가는 힘바 사람들은 곡선과 유기적 형태가 많은 풍경을 매일 보고 삽니다. 그래서 착시에서 직선과 각 같은 요소에 덜 민감하고, 곡선이나 원형을 더 쉽게 인지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습니다.
보편성이라는 환상
하버드대 진화심리학자 조셉 헨리히(Joseph Henrich) 교수는 이 연구 결과에 대해 “마음을 연구할 때 문화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특수성을 인간의 보편적 특성으로 잘못 받아들일 위험이 있습니다. 선진화된 서구사회, 즉 WEIRD(West,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atic)사회가 세계적, 역사적으로 매우 특이한 문화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논평했습니다.
이번 연구의 공동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런던정경대(LSE)의 마이클 무투크리슈나(Michael Muthukrishna) 교수는 시각적 인식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공통적인 것을 배우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차이 또한 중요합니다.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한다면, 당신이 사각형만 보는 곳에서 원을 보는 사람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다양성의 본질입니다.”
막심 크루핀 교수 연구팀은 후속 연구에서 착시의 기제와 문화적 차이가 뇌의 시각 처리 과정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탐구할 계획입니다.
이번 연구는 교육, 디자인, 인공지능 개발, 국제 커뮤니케이션, 심리학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왜냐하면 같은 것을 보고도 나와 다르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미비아 힘바족 전통 마을은 둥근 오두막들이 원형을 이루고 있다.(사진=Wikipedia)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