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개방은 닫혀 있던 경계를 풀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을 연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숨김없이 교류를 허용하는 공개의 공간을 전제로 말이죠. 하지만 모든 것엔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시스템 구조로 풀어보면 오픈 시스템(Close System)은 자유롭고 확장된 공간을 제공하고 더 넓은 곳으로 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활동할 수 있는 넓은 무대가 이점인 데 반해 경쟁 체제 속에서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승자와 패자의 저주도 존재합니다. 무한, 출혈 등 과도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세계화는 이젠 전쟁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듯이 말이죠.
클로즈 시스템(Open System)은 불확실성 외부 압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정적 구조이나 규제와 억제로 혁신적 기회의 제약과 자유로운 교류를 억압받게 됩니다.
지난 1일 부산 남구 신선대와 감만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사진=뉴시스)
1980년대 중후반 세계화의 신자유주의와 무역 자유화 바람은 보호무역적 요소를 유지하던 우리나라의 산업화에도 확산된 바 있습니다. 미국·일본 등 주요 교역국의 개방 압력이 거셌고 관세 무역 일반 협정(GATT)의 문제점을 풀기 위해 새로운 다자간 무역 협정을 뜻하던 우루과이 라운드는 농산물 시장 개방, 지적재산권, 서비스 무역 등의 쟁점에서 사회적 혼돈을 불러왔습니다.
특히 쌀 시장 개방은 결국 1995년부터 쌀 관세화 유예,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에 따른 수입 쌀 도입을 시작으로 가장 민감한 이슈 때마다 '성난 농심'을 자극하던 목숨값의 이음동의어였습니다.
그 당시 '성난 농심'의 울부짖음을 뒤로 부르짖던 산업화 전략은 수출 역군, 수출 성장이라는 또 하나의 양면성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시장 개방은 1990년대 초반 제조업 경쟁력 강화와 함께 수출 다변화로 4년 만에 총 수출 960억달러를 찍고 이듬해인 1995년 1250억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전자, 자동차, 철강 등 주요 품목의 성장가도가 이뤄낸 수출 역사의 단면입니다.
무역 전반에 걸친 규범 강화의 필요성이 절실했고 GATT를 대체하는 국제기구가 출범하면서 우리나라는 1995년 1월1일 세계무역기구(WTO) 정회원국으로 가입했습니다. 서비스 시장 개방이 금융, 통신, 교육 등으로 확대되면서 커지는 무역 환경의 글로벌적 규율이 요구됐던 때입니다.
지난 1일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야적장에 수출입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뉴시스)
세계화가 더 많은 경제 영토로 확장할 전략을 꺼내든 것은 2000년대 이후입니다. 회원국 간 무역자유화를 위해 관세 등 각종 무역장벽을 걷어낸 자유무역협정(FTA) 전략과 글로벌 가치사슬(GVC) 참여가 대표적입니다.
경제 영토가 확장될수록 시장 개방은 더 넓어졌습니다. 2004년 칠레와의 첫 FTA 체결 이후 한·미, 한·EU, 한·중 간의 잇단 발효 등 글로벌 공급망 중심국으로 부상했으며, 2010년 수출 4680억달러를 찍고 2022년 사상 최대인 6800억달러를 넘어섰습니다.
그러나 수출 주도형 산업 구조의 강화 속에 대한민국의 농산물 개방은 피할 수 없는 필수 조건이 돼왔습니다. 농업 분야는 심각한 타격과 구조적 변화를 겪어왔기 때문입니다.
수입산 농산물과의 우위 다툼에서 밀리는 경쟁력 약화와 산업 축소를 부정할 순 없습니다. 소규모·고령 농가 중심의 한국 농업 구조와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기계화의 외국 농업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죠.
1990년대 초반 700만명에 달하던 농업 인구는 2023년 기준 약 210만명 수준으로 70% 이상 감소했습니다. 농가 소득 정체, 영세농 몰락, 농촌 공동화가 가속화된 결과입니다. 이쯤하면 시장 개방 이후 농업을 포기한 농민이 급증했다고 단언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밀, 옥수수, 콩 등이 90% 이상 수입인 걸 감안하면 주요 곡물 수입의 의존도는 심화되는 등 식량 자급률은 하락했습니다. 식량주권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죠.
대한민국은 무역 자유화를 통해 제조업 기반의 수출 대국으로 도약했으나 그 과정에서 농업은 사실상 희생양 역할을 해온 셈입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제 블록화 그늘의 패권 전쟁터인 오늘날. 광우병 위험으로 촉발된 사회적 파동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제한은 완화 여부로, 미국산 사과 수입 개방 여부도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측은 대미 관세 협상 타결과 관련해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제한 완화, 미국산 사과 수입 등의 검토가 정부 차원에서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최대한 반영하고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관세 협상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벼랑 끝을 부여잡고 있는 농가들의 시선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한·미 FTA 에 따라 당장 내년부터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관세 철폐를 앞두고 있는 데다, 미국의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허용 요구가 위기감을 불러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30년간 대한민국 농업은 국제 통상 협상 과정에서 고통을 강요받아왔습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 됩니다. 농업·농촌의 발전 없이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농업은 선진국의 기본 토대이기 때문입니다.
식량주권과 국민의 생존권 앞에 더는 농업을 협상의 유연성으로 접근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13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한우가 진열돼 있다. (사진=뉴시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