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박시온 연구원, 충남대 이종원 교수, 최신현 교수. (사진: KAIST)
[뉴스토마토 임삼진 기자] "살짝 스치는 감촉은 무시해도, 날카로운 자극에는 즉각 반응하는 손. 이제 로봇도 사람처럼 그렇게 ‘판단’하며 반응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최신현 석좌교수, 충남대학교 이종원 교수, KAIST 박시온 연구원으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이 인간의 감각 신경계를 모사한 인공 감각 신경계 시스템을 멤리스터 기반으로 구현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술은 단순한 센서 반응을 넘어서, ‘중요한 자극만 골라 반응하고, 익숙한 자극은 무시하는’ 생체형 학습 기능을 하드웨어 차원에서 구현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습니다.
습관화와 민감화, 둘 다 담은 멤리스터
사람의 신경계는 자극에 무조건 반응하지 않습니다. 반복되거나 익숙한 자극에는 반응을 줄이는 ‘습관화’, 반대로 위협적이거나 강한 자극에는 반응을 증폭시키는 ‘민감화’ 기능을 통해 에너지를 아끼고 생존율을 높입니다. 이를 로봇에 적용하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대부분 복잡한 회로나 고전력 프로세서가 필요해 실용화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기존 멤리스터 구조에 상반된 방향의 전도도 변화를 유도하는 두 층을 통합한 신개념 소자를 개발했습니다. 이를 통해 자극이 반복되면 반응을 줄이고(습관화), 강한 자극에는 다시 반응을 높이는(민감화) 복잡한 시냅스 반응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습관화와 민감화 현상의 예시. (사진: Nature Communications)
기존 연구 대비 “기능·효율 모두 월등”
연구진은 개발한 멤리스터를 로봇 손에 탑재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촉각 자극에 반응하던 로봇 손이 자극이 반복되자 반응을 점차 줄였고, 이후 전기 충격과 함께 자극을 가하자 즉각적으로 다시 반응을 높이는 민감화 특성이 관측됐습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평균 반응 속도, 자극 반복 시 반응 전도도 감소, 고자극(전기) 시 전도도 상승폭, 평균 전력 소비 등이 탁월하게 개선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성능 향상은 소형 로봇이나 웨어러블 기기, 로봇 의수 등 고성능·저전력 구현이 필수적인 분야에서 곧바로 응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읍니다.
이번 연구는 이전의 유사 연구에 비해서도 상당히 월등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예를 들면 고통 자극에 반응하는 멤리스터를 개발됐지만, 반복 자극에 반응을 줄이는 ‘습관화’ 기능은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또, 복합 자극(압력·온도)에 반응하며 임계치를 자동 조정하는 자가 재구성형 멤리스터가 발표되었지만, 회로 복잡도가 높고 반응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반면 이번 국내 연구는 단일 멤리스터 소자로 습관화와 민감화를 모두 구현하면서도, 해외 유사 기술 대비 응답 시간은 2배 빠르고, 에너지 소비는 80% 이상 줄였다는 점에서 기술적 우위를 분명히 했습니다.
박시온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사람의 감각 학습 방식을 모방해 로봇이 중요 자극에만 집중하고 불필요한 반응은 줄이는 ‘선택적 감각 반응 시스템’을 하드웨어 수준에서 구현한 것”이라며, “앞으로 군용 로봇, 재난 구조용 초소형 로봇, 혹은 의료용 로봇 의수 분야에서의 적용이 기대된다”고 밝혔습니다.
로봇이 사람처럼 감각 정보를 필터링하고, 선택적으로 반응하며, 외부 환경에 따라 반응 강도를 조절한다는 것은 기술 진보의 경계가 어디일지 의문을 증폭시킵니다.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7월1일 게재되었습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보틱스 기술이 접목된 대표적 융합 연구 사례로 인공 감각 신경계의 진화는 이제 단순한 센서 기술을 넘어서, 인간과 유사한 지능(human-like intelligence)의 구체적 실현 단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공지능이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고 계산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처럼 이해하고 사고하며, 학습과 추론은 물론 감정을 고려하여 맥락에 따라 반응하는 지능으로 성큼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감각 신경계의 습관화 및 민감화 기능 모사가 가능한 새로운 멤리스터 소자의 실물 모습과 설명도(위). 기존 멤리스터의 단순한 전도도 변화 특성과 개발된 멤리스터의 복잡한 전도도 변화 특성(아래). (사진: KAIST)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