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보유한 공익재단은 사회공헌 사업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 조직이면서 동시에 지주사 지분율을 보유하며 사실상 그룹의 지배구조를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경영권 분쟁의 마지노선으로 공익재단이 존재감을 드러내 오너 일가의 경영 승계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공익재단은 특정 개인이나 기업의 재산 출연으로 설립됐더라도 오너 일가나 기업 집단의 사익이 아닌 공익적 목적으로 활동해야 하고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합니다.
본지 기획 시리즈에서는 유한양행 '유한재단', 녹십자그룹 '목암생명과학연구소', '미래나눔재단', '목암과학재단', 대웅 '대웅재단' '석천나눔재단', 종근당 '고촌재단', 한미그룹 '임성기재단' '가현문화재단' 등 5대 제약사가 소유한 공익재단이 그룹의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특히 의결권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공익재단을 지렛대로 삼아 오너 일가가 경영권을 승계하거나 지배력을 유지 강화하는 데 이용한다는 지적이 타당성을 갖는지도 검증했습니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이혜현 기자] 대웅그룹 지배구조는 윤재승 최고비전책임자(CVO)를 중심으로 지주사가 계열사를 장악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그룹이 보유한 공익법인은 대웅재단과 석천나눔재단이고, 모두 윤재승 CVO가 이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두 개의 공익법인 중 대웅재단은 지주사와 주요 계열사 지분율을 보유하며 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윤재승 CVO는 지주사
대웅(003090)의 최대주주로 11.64%의 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2대 주주는 대웅재단으로 지주사 지분을 9.98%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웅그룹의 지배구조는 윤재승 CVO가 최대주주로 있는 지주사 대웅이
대웅제약(069620) 등 핵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웅재단이 오너 일가 우호 지분으로 윤재승 CVO의 그룹 장악력을 견고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웅재단은 대웅제약 지분도 8.62%를 보유한 2대 주주입니다.
대웅재단은 단순히 사회공헌 활동을 영위하는 공익재단 이상의 영향력을 지배구조에 미치고 있는 셈이죠. 창업주 고 윤영환 명예회장의 삼남으로 경영권을 물려받은 윤재승 CVO는 201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을 당시 대웅재단 이사직만큼은 유지하면서 그룹 지배력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습니다.
대웅재단이 지난 30여년간 대한민국과 글로벌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우수 인재 육성에 힘써왔고 앞으로도 기업 지배구조와 무관하게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공익 활동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입장인데요. 대웅그룹 측은 "재단은 공익법인의 역할과 책임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재단의 운영이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이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사업을 공정성과 객관성이 확보되는 체계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4년 연속 90%대 공익목적사업 비용 투입
총 5인의 이사들로 구성된 대웅재단 이사회는 윤재승 이사장 1명을 제외한 모든 이사회 구성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됐습니다. 지난해 대웅재단의 총 사업 비용으로 34억4000만원이 사용됐고 이중 공익목적사업에 쓰인 금액은 전체 사업 비용의 91.9%인 31억6000만원이었습니다. 대웅재단은 4년 연속 공익사업 비용이 전체 사업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난해 대웅재단 총 사업 비용과 공익목적사업 비용은 전년도보다 각각 5.6%, 5.3% 줄었습니다.
대웅그룹 관계자는 "대웅재단의 이사회는 이사장을 제외한 나머지 이사들은 외부 전문가와 독립적인 인사들로 구성해 운영의 객관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신진 의·과학자 학술지원사업과 장학사업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 위원회가 참여해 지원자 선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시행을 앞두고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과 공익법인 독립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여권에서도 자사주 의무 소각 등 상법 개정안의 범위를 확대해 추가 개정에 나선다는 방침이죠. 국회에서 추가로 발의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들은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가 핵심입니다. 특히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상법 개정 법안에 추가하는 것은 기업의 자사주 비중이 높을수록 대주주 지배력을 키우고 일반주주 가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웅의 자사주 비율은 29.67%로 5대 제약사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머지 제약사들의 자사주 비율을 살펴보면 유한양행 7.84%, 종근당홀딩스 4.98%, 녹십자홀딩스 4.45%, 한미사이언스 0.99% 등 10%를 넘지 않습니다.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강화, 지배구조 투명성 직결
일각에서는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을 위해서는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규정을 강화하고 본연의 사회공헌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창민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공익재단이 지주사 최대주주로 사실상 기업의 오너 일가 지배력을 강화하는 우회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인데 이는 결국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이 악영향을 미친다"면서 "사회공헌 활동이 주목적이라는 주장에 진정성이 있으려면 공익 목적과 투명한 재산 출연, 공공성과 투명성이 보장되는 관리와 운영 체계를 통해 외부에서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이 교수는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우회 수단으로 공익법인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제한 규정을 강화하고 본연의 목적인 사회공헌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공익법인 제도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