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최대 수혜 차업계, 15% 타결에 ‘경쟁력 하락’ 우려

일본·EU 2.5%→15%, 한국 0%→15%
미국 수출차 2.5% '가격 경쟁력' 잃어
“관세 영향 최소화 다각적 방안 추진”
시장 전면 개방 여부 혼선 ‘불씨’ 남아

입력 : 2025-07-31 오후 2:48:45
[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한국과 미국 간 자동차 관세가 15%로 최종 확정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가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당초 예상됐던 25% 관세보다는 낮아져 일단 안도하고 있지만, 그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혜택으로 누려왔던 관세 0% 특혜를 잃게 되면서 가격 경쟁력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시장 전면 개방을 언급한 반면, 정부는 관세 인하에만 초점을 맞춘 발표를 하면서 시장 개방 범위를 둘러싼 불씨도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된 31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 전용 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 (사진=뉴시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미국과 한국이 포괄적 무역합의에 최종 합의했다며 자동차에 대해 15% 관세율을 부과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는 애당초 거론됐던 25% 관세보다 10%포인트(p) 낮아진 수치로, 완성차 업계에서는 우선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번 관세율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의 최대 경쟁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적용받는 15% 관세와 같은 수준입니다. 이에 따라 미국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 EU 등 ‘빅3 수출국’ 간 경쟁 구도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일본이나 EU보다 불리한 조건을 받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한국 자동차 업계가 그간 누려왔던 특혜를 고려하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한미 FTA 체결 이후 한국산 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관세 0%를 적용받아왔던 반면, 일본과 EU 자동차는 2.5%의 관세를 부담해야 했습니다. 쉽게 말해 일본과 EU는 2.5%에서 15%로 올랐고, 한국은 0%에서 15%로 올라가 2.5%의 가격 경쟁력을 잃은 것입니다.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347억달러(한화 약 48조원)로 판매 대수만 해도 143만대에 이릅니다. 지난해 전체 한국 자동차 수출량이 278만대 중 절반 가까이가 미국으로 팔려 나간 것입니다. 같은 기간 일본과 EU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각각 6조261억엔(약 56조원), 389억유로(약 63조원)를 기록했습니다. 
 
제네시스 G80 전동화 부분 변경 모델. (사진=뉴시스)
 
‘불행 중 다행’…가격 경쟁력은 하락
 
업계에서는 이번 합의를 ‘불행 중 다행’으로 평가하면서도 가격 경쟁력 하락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25% 관세가 부과됐다면, 한국 자동차의 미국 시장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다행이지만, 그간 누려온 관세 혜택을 잃는 것은 큰 손실이라는 것입니다. 
 
15% 관세가 적용되면 한국 자동차의 미국 내 판매가격이 상당 폭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차의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평균 가격은 트림 및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4만달러에서 5만달러 후반대 사이에 형성됩니다. 여기에 15%의 관세를 추가한다면, 차량 한 대당 6000~8700달러의 추가 부담이 발생합니다. 
 
관세 부담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할 경우 판매량 감소가 불가피한 반면, 제조사가 관세 부담을 흡수할 경우에는 수익성 악화를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됩니다. 글로벌 완성차 판매량 3위를 기록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미국 점유율은 2019년 7.8%에서 올 상반기 10.9%까지 끌어 올리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왔습니다.
 
하지만 15% 관세가 적용되면 이러한 성장세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시장의 우려를 반영된 듯 이날 현대차와 기아의 주가는 동반 약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오후 2시43분 기준 현대차는 전일 대비 7000원(4.48%) 내린 21만3000원에 거래됐고, 기아도 전일보다 7600원(6.88%) 하락한 10만2800원에 거래됐습니다. 
 
물론 업계도 미국 내 현지 생산 확대 등 관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이미 앨라배마주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건설했습니다. 그럼에도 현지 생산만으로는 모든 모델을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고급 세단 등 소량 생산 모델의 경우 현지 생산보다는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관세 부담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고부가가치 모델 비중을 늘리는 전략도 거론됩니다. 관세율이 동일하더라도 차량 가격이 높을수록 관세 부담의 상대적 비중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관세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품질 및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 등을 통해 내실을 더욱 다져 나갈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 경쟁력 강화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미국 정부가 친환경차 보급에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어 이를 활용하면 관세 부담을 일정 부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
 
시장 전면 개방 두고 한미 ‘혼선’
 
이번 합의에서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시장 개방 범위를 둘러싼 혼선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발표에서 “한국이 자동차와 트럭, 농산물을 포함한 미국 제품을 수용해 무역을 완전히 개방(completely open)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미국이 그간 한국에 요구해왔던 각종 비관세 장벽 철폐를 한국이 상당 부분 수용했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반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같은날 브리핑에서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췄다”며 “비관세 장벽과 관련해서 앞으로 검역 절차 개선, 자동차 안전 기준, 동등성 인정, 상한 폐지 등을 포함해 기술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앞으로 협의를 계속 이뤄 나가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 간 발언이 엇갈리면서 실제 합의 내용과 이행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예상됩니다. 
 
비관세 장벽 철폐가 관세보다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안전 기준, 환경 규제 등 각종 규제가 완화될 경우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 시장 진입이 더욱 쉬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시장의 보호막 역할을 해왔던 이들 규제가 사라지면 국내 자동차 업계가 본격적인 개방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한국의 자동차 시장은 내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지 않아 그 영향은 제한 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습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 자동차들이 국내에서 비싸서 안 팔리는 것이 아니고, 주차, 주행 등 환경에 걸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비관세 적용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미국산 자동차의 판매가 폭등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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