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소득의 1%를 기부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의 수에 대한 일반 시민들과 정책결정자들의 인식 격차 (사진=ChatGPT를 통해 작성)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유엔 환경총회(UNEA) 참석 정치인과 정책 관계자 191명을 조사한 결과, '기후 행동'을 지지하는 대중 비율을 실제보다 절반 가까이 낮게 추정하는 인식 격차가 확인됐습니다. ‘월급의 1%를 기후 문제 해결에 기꺼이 내겠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비율을 추정하게 하자, 전문가 그룹조차 대중 지지를 실제보다 크게 과소평가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8월4일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지구와 환경(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게재되었습니다.
연구진은 2024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6차 유엔환경총회(UNEA-6)에 참석한 전 세계 53개국 대표·관계자 19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 연구에는 UN과 다자기구 관계자, 24명 이상의 현직 기후정책 협상가도 포함됐습니다.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전 세계 사람 100명 중 몇 명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매달 소득의 1%를 기부할 의향이 있다’고 답할 것 같습니까?”
조사 결과, 참석자들은 평균 37.8%만이 기부 의향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전 세계 125개국 13만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설문에서는 실제 응답자의 69%가 기부 의향을 밝혔습니다. 무려 31.2%포인트 차이로, 대중의 기후 행동 지지가 절반 가까이 저평가된 셈입니다. 특히 정책결정자(정부·국제기구)와 비정책 부문(학계·NGO·기업) 간에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습니다. 국제 환경정책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인사들이 일반 시민의 기후 행동 의지를 절반 수준으로 과소평가하게 되면 이로 인해 실제보다 소극적인 정책 목표가 설정될 위험이 있습니다.
인식 격차의 원인이 전문성 부족?
연구진은 과소평가의 원인을 ‘전문성 부족’에서 찾기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응답자들은 온실가스 배출 5대 부문(에너지·산업·수송·농업·건물)의 기여도를 순위 매기는 응답에서 상당수가 정답에 근접한 결과를 보였습니다. 기후 관련 지식이 상당함에도, 여론에 대한 체감은 낮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타인의 환경 의지를 실제보다 낮게 인식하는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 현상이 국제 정책현장에서도 작동함을 보여준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입니다.
이 연구의 제1저자인 옥스퍼드대 시멩 팡(Ximeng Fang) 박사는 “국제 환경정책에 관여하는 인사들이 대중의 지지 수준을 정확히 인식한다면, 보다 과감하고 야심찬 정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시민들의 지지가 생각보다 넓게 퍼져 있음에도 이를 간과하게 되면, 정책 목표와 실행력 모두 위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를 정확히 알면, 국제 협상에서 더 큰 기후 재정 조달이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주장할 근거가 강화됩니다.
이 연구의 교신저자인 옥스퍼드 스미스 스쿨 스테파니아 이노첸티(Stefania Innocenti) 교수는 “정책입안자의 결정은 대중의 여론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들이 대중이 기후변화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과소평가하는 것이 그들의 정책 목표를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책가들의 착각은 언론 보도나 로비 활동, 편향된 사회 네트워크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착각은 기후 관련 정책적 노력을 제한하도록 이끌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침묵의 나선’이 만든 지지 착시…시민들은 이미 준비돼 있다
비슷한 사례는 다른 연구에서도 나타납니다. 영국 랭커스터대 리베카 윌리스 교수팀은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재생에너지 지지를 크게 낮게 추정하는 경향을 확인했습니다. 예컨대 육상 풍력 지지는 국민 72%지만, 일부 의원의 추정치는 19%에 불과했습니다. 미국 연구에서도 정책 담당자들이 기후 행동 지지를 20~30%포인트 낮게 잡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일반 시민들의 인식도 다른 시민들의 기후 행동 지지를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계 125개국, 13만 명을 조사한 결과, 89%가 정부의 기후 대응 강화를 찬성했지만, 대부분은 이를 훨씬 적은 비율로 예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 현상으로 해석합니다. 자신이 소수라고 믿을 때 침묵하게 되고, 그 결과 사회 전반의 의지가 과소평가되는 심리 구조를 말합니다.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정책가들이 더 과감하게 기후 정책을 추진해도 국민은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합니다. 연구진은 향후 국제회의 참가자 교육 과정에 ‘전 세계 여론 데이터’ 공유를 포함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아울러 다양한 국가·문화권의 시민 의식을 실시간 파악할 수 있는 글로벌 여론 모니터링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정기적·투명한 여론 조사 공개와 시민참여형 정책 설계가 이루어진다면 보다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정확하게 이와 일치하는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없지만, 일반 시민들의 기후위기에 대한 정책 지지도와 실제 정치권이나 정책가들의 인식이나 선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식의 격차를 줄여 보다 적극적인 기후위기 대응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환경운동가들의 요구만은 아닐 것입니다.
1970년 독일의 사회과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Elisabeth Noelle-Neumann)이 처음 제시한 ‘침묵의 나선’ 이론. 사회적 담론에서 소수 의견이 고립 두려움으로 인해 침묵하고, 다수 의견이 강화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침묵의 나선(The Spiral of Silence)』 책 표지. (사진=amazon.com)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