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석화, 구조조정 필요성 동의…어디부터? ‘촉각’

석화업계 실적 악화 지속…2분기 영업손실 1분기 두 배
각 사 이해관계 얽혀 구조조정 실패…‘자율 빅딜’도 답보
정부, ‘선 자구책, 후 정부 지원’ 기조…개편안 제출 촉구
업계, 정부 기조 발맞추기…“현실적인 지원 방안도 필요”

입력 : 2025-08-20 오후 3:25:00
[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중국산 저가 공세와 글로벌 경기 둔화로 ‘구조적 불황’에 빠진 가운데, 정부가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추진 방향’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구조조정 유도에 나섰습니다. 업계가 그동안 자율적으로 ‘사업 재편’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자, 정부는 생산설비 감축·폐쇄, 설비 효율화 등에 나서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업계 안팎에서는 범용 제품 비중이 큰 롯데케미칼과 나프타분해시설(NCC)만 가지고 있는 대한유화, 정유사 계열 NCC 등이 가장 구조조정이 시급한 곳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일 정부는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추진 방향’을 발표했습니다. 공급 과잉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생산 감축에 나서는 기업에는 맞춤형 지원을 하되, 무임승차 하려는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정부는 통폐합 대상 업체들과 구조 개편 방향을 논의하고, 하반기 중 사업 재편 계획안을 제출받아 향후 지원책의 근거로 삼을 예정입니다. 
 
자율 구조조정 사실상 실패…실적 악화 지속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2022년을 기점으로 중국발 공급 과잉, 수요 둔화, 탈탄소 압박이 겹치며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중국은 2020년부터 자급률 제고를 앞세워 대규모 증설에 나섰고, 그 결과 에틸렌 생산능력이 2020년 3227만톤(t)에서 지난해 5440만t으로 급증해 전 세계 증설 물량의 64%를 차지했습니다. 
 
이 여파로 불황은 2023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2분기 롯데케미칼은 2449억원, LG화학 석유화학부문은 904억원, 한화솔루션 케미칼부문은 46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금호석유화학이 652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직전 분기 대비 이익이 45%가량 줄며 힘을 받지 못했습니다. 주요 4사의 합산 영업손실은 3169억원으로, 1분기(1593억원)의 두 배 이상 불어났습니다. 상반기 합산 영업손실은 4762억원에 달합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합산 영업 손실이 7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7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입니다. 
 
실적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자율 구조조정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조선업계가 수익성 악화와 일감 부족에 대응해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인수합병을 단행했던 것과 달리, 석화업계는 정부 개입 대신 자율적인 체질 개선을 택했습니다. 한국석유화학협회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진행한 컨설팅 과정에서도 기업 결합과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방안이 논의됐지만, 기업 간 이해관계를 이유로 최종안에는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구조조정의 핵심인 과잉 설비 축소와 통폐합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면서 성과를 내지 못한 셈입니다.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의 NCC 통합 논의는 지난 6월부터 거론됐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고, 합작 법인인 여천NCC를 두고서도 대주주인 한화그룹과 DL그룹 간 갈등이 이어지는 등 상황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전남 여수에 위치한 여수국가산업단지. (사진=뉴시스)
 
칼 빼든 정부…“‘무임승차’ 지원 안 해”
 
앞서 정부는 지난해 12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통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업계의 자율적 사업 재편을 촉구한 바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업체 간 눈치 보기 양상이 지속되면서 위기가 심화했습니다. 
 
이에 정부가 자율에 맡겨왔던 구조조정에 본격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생산 감축 등 구조조정에 적극 나서는 기업에는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되, 별다른 노력 없이 지원만 기대하는 기업은 배제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지원이 뒤따른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구 부총리는 이날 “과잉 설비 감축과 근본적 경쟁력 제고가 필요하다”며 “기업과 대주주가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토대로 구속력 있는 사업 재편 및 경쟁력 강화 계획을 업계 스스로 신속히 마련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석화업계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공급 과잉 문제 해소를 위해 주요 10개 석화기업에 270∼370만t 규모의 NCC 감축 목표를 세우고 각 사별로 구체적 사업 재편 계획을 연말까지 제출하는 협약을 이날 체결했습니다. 협약에 참여한 10개 기업은 △LG화학 △대한유화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한화솔루션 △DL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HD현대케미칼 △GS칼텍스 △에쓰오일 등입니다. 
 
이는 현재 국내 전체 NCC 생산능력 1470만t의 18∼25%에 해당합니다. 이 같은 감축 규모는 올해 업계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통해 자율 컨설팅 용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도출된 수치입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여수 NCC를 비롯해 대한유화, 정유사 계열 NCC, 롯데케미칼 등이 가장 시급한 구조조정 대상으로 우선 거론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 화학업계 관계자는 “NCC만 갖고 있어 공장을 가동할수록 적자를 보는 대한유화, NCC사업에 뛰어든 정유사들, 범용 제품의 비중이 높은 롯데케미칼 등은 구조조정의 압박이 높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9일 석유화학 기업 10곳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사업재편 자율협약식’을 열고 구조조정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중국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설비는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자율 재편이 속도를 내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라는 점도 강조됐습니다. 
 
업계는 이를 위해 △중국산 저가 제품 유입 차단 △정책자금 5조원 이상 확대 △전기·물류비 부담 완화 △공정거래법상 담합 예외 인정 등을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현재 산업은행 등을 통한 지원 규모는 약 3조원 수준으로, 구조조정과 동시에 고부가·친환경 설비 전환에 투자하려면 최소 5조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아울러 기업 간 협력이나 설비 조정 논의조차 현행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점, 매년 3000억원 이상을 부담하는 전기료 역시 완화가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됐습니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구조조정에 직접 나선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업계가 실제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등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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