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남매경영 시대)③분업 넘어 독립 전략으로…'미래형' 모델 부상

CJ·신세계·삼성 등…산업군 달리한 '이종 분업' 독립 경영
각자 전문성 기반 자율 경영으로 그룹 외연 확장 기여

입력 : 2025-09-01 오전 6:00:00
이 기사는 2025년 08월 28일 16:1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주요 그룹사에서 여성 오너 후계자의 경영 참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한 ‘지분 보유자’에 머물렀던 여성 후계자들이 이제는 실질적 경영 역할을 맡으며 조직의 핵심 전략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각자 그룹 내 주요 사업을 전담하며 남성 오너와는 분업의 형태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남녀 역할 구분이 아닌 실적 기반의 경영 승계가 새로운 형태로 자리 잡는 과정이기도 하다. <IB토마토>는 여성 후계자들의 등장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변화와 함께 남매경영의 협력과 갈등 요인, 그리고 미래 경영 모델로의 전환 가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과거 오너 자녀들이 단순히 지분을 나눠 일부 사업만 맡던 수준을 지나 최근에는 주요 그룹에서 남매 이종 분업 경영 모델이 자리 잡는 추세다. 각자 전문성을 살려 독립적인 전략을 추진하면서 그룹 전체 외연을 확장하고 동시에 지배구조 안정성과 리스크 분산 효과를 가져오는 방식이다. 이미 CJ(001040)그룹, 신세계(004170)그룹, 삼성그룹 등의 사례는 남매경영이 지향할 수 있는 미래형 모델을 보여준다. 결국 남매경영은 단순한 분업을 넘어 독립적 책임과 성과를 통해 그룹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최대 과제로 꼽힌다.
 

(사진=CJ)
 
산업별 분리 경영…새로운 남매경영 모습

28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오너가 4세인 이선호 CJ제일제당(097950) 식품성장추진실장(부사장급)은 오는 9월 그룹 지주사인 ㈜CJ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후계 경영의 닻을 올린다. 이선호 실장이 지주사로 복귀하는 것은 지난 2019년 이후 약 6년 만이다.
 
이선호 실장은 그동안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을 맡아 그룹의 글로벌 식품 사업을 이끌었다. 그룹의 모태가 되는 식품 사업에서 승계 작업을 시작한 셈이다. 반면 누나인 이경후 CJ ENM(035760) 브랜드전략담당실장은 음악콘텐츠사업본부 최고창작책임자(CCO)를 겸하며 콘텐츠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CJ그룹은 남매 경영의 분업화가 잘 갖춰진 곳으로 꼽힌다. 앞서 이재현 CJ 회장은 식품과 물류를 담당하며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000120)을 성장시킨 후 지주사를 통해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미경 부회장은 CJ ENM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경영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콘텐츠·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이끌며 글로벌 시장에서 K콘텐츠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업 구조와 수익원이 전혀 다른 두 축이 독립적으로 성장하면서 그룹은 한쪽 산업이 흔들리더라도 다른 부문이 보완할 수 있는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이야기다. 콘텐츠와 식품이라는 이종 산업의 결합이 오히려 경영 자율성과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 사례다.
 
신세계그룹도 독립형 남매 경영 모습으로 그룹을 재정비하고 있다. 지난해 정용진 회장과 정유경 회장이 각각 신세계그룹, ㈜신세계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각자 대표 체제를 구축했고, 올해는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으로부터 받은 지분을 정리하면서 사실상 분리 경영으로 전환했다.
 
정용진 회장은 이마트(139480)와 트레이더스 등 유통 채널을 전면에 내세우며 가격 경쟁력과 점포 확장 전략을 구사 중이다. 정유경 회장은 백화점 부문에서 프리미엄 소비자를 겨냥해 고급 브랜드와 문화 콘텐츠를 강화하는 식으로 다른 색의 경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삼성그룹 역시 남매의 독립 경영이 뚜렷하게 자리 잡은 곳이다. 이재용 회장은 전자·반도체 등을 중심으로 전체 그룹사를 주도하고,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008770)를 통해 글로벌 면세점 사업에 역량을 쏟고 있다. 서로 겹치지 않는 산업군에서 독자적 전략을 펼치며 사실상 독립 경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에 “남매가 완전히 분리된 듯 보이지만 일부 영역에서 상호 브랜드 파워를 활용해 보완하는 협업이 나타난다”며 “이런 구조가 바로 미래형 남매경영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계열분리와 실적 검증…남매경영 미래 과제

독립형 남매경영은 미래형 모델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벽은 계열분리다. 국내에서는 지주사와 계열사 간 지분 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남매가 각자 독립적으로 경영하더라도 결국 지배구조 문제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지분율이 낮거나 상속·증여 절차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0월 이마트와 신세계의 계열 분리를 공식화했지만, SSG닷컴의 지분 정리를 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현재 SSG닷컴은 이마트가 45.58%, 신세계가 24.42%를 보유한 유일한 공동 자회사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비상장사의 경우 계열분리를 인정받으려면 친족 간 상호 지분 보유율이 10% 미만이어야 하며 임원 겸임이나 자금 지원도 없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려면 이마트가 ㈜신세계 지분을 추가로 15% 이상 확보해야 하는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재무적 부담이 뒤따른다.
 
시장에서는 이마트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SSG닷컴이 정용진 회장 체제로 귀속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유경 회장이 이끄는 ㈜신세계는 자체 온라인 플랫폼을 강화하며 독자 노선을 택할 것이란 예상에 힘이 실린다. 다만 지분 조정 과정에서의 자금 마련 이슈가 향후 남매경영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남매가 각자 산업에서 성과를 내면 그룹은 자연스럽게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형성할 수 있다”면서도 “계열분리와 지분 정리가 병행되지 않으면 지배구조 불안이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갈등을 낳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남매경영 모델은 실적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전제를 안고 있다. 결국 오너십에만 의존하기보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면서 전문경영인과의 역할 분담, 책임 경영 시스템을 확립하는 기업 지배구조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유정 변호사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최근 여성 오너들이 문화와 유통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지만 결국에는 독립적 성과가 지배구조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며 “오너십의 장점과 전문경영인의 실행 역량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미래형 남매경영이 지속 가능한 모델로 발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김규리 기자
SNS 계정 : 메일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