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K-콘텐츠가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적재산권(IP) 주권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귀속되면서 국내 콘텐츠 산업의 위축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K-콘텐츠에 전 세계 이목이 쏠리는 사이 정작 한국은 IP 빈곤국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데요. 글로벌 OTT를 견제할 수 있는 통합 OTT의 탄생이 시급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쏠리지만, 핵심 후보인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지연 속 골든타임이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K-드라마 제작 편수는 2019년 120여편에서 2023년 70여편으로 약 40%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평균 제작비는 4배 이상 급등해 제작사들의 부담은 가중됐습니다. 글로벌 OTT들이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콘텐츠 시장을 장악하며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글로벌 OTT의 수익 독점은 바이아웃(buyout) 계약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는 대신 IP 전권을 확보해 영화·음악·굿즈 등 파생 사업으로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제작사는 미미한 수익만 가져가게 됩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지난달 15일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례를 통해 바이아웃 계약의 문제점을 짚기도 했는데요. 제작사 소니 픽처스는 약 278억원의 수익에 그쳤지만 넷플릭스는 영화와 부가 사업을 통해 1조3900억원 이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이러한 계약 분위기 속에 한국의 IP 경쟁력도 뒤떨어지고 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라이선스글로벌의 2025 세계 지식재산권 상위 50 명단을 분석한 결과 IP 시장 상위 50개 기업 중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콘텐츠 한류가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국내 IP 경쟁력은 취약한 셈입니다.
국내에서 서비스 중인 OTT 앱. (사진=뉴스토마토)
IP 주권 확보를 위한 방법론으로 통합 OTT 플랫폼 탄생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티빙과 웨이브 합병도 이러한 이유로 진행이 되고 있는데요. 통합 OTT가 출범하면 IP를 글로벌 OTT에 넘기지 않고 국내에 유통·축적하는 것이 가능하고, 확보한 IP를 기반으로 파생 사업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시청자 데이터 활용을 통한 제작·마케팅 고도화, 글로벌 동시 공개·직접 수출도 통합 OTT의 긍정적 역할로 거론됩니다.
문제는 티빙과 웨이브 합병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티빙과 웨이브는 신임 대표로 지난달 7일
CJ ENM(035760) 출신 서장호 경영리더를 선임하며 시너지 창출 의지를 보였지만, 지난 6월 티빙과 웨이브 임원 겸임 신고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 조건부 승인 이후 별다른 진척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티빙의 주요 주주인
KT(030200)가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는 것이 주요 이유로 꼽힙니다.
OTT 업계에서는 K-콘텐츠와 OTT 골든타임을 고려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습니다. K-콘텐츠가 글로벌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유통 주도권·수익은 사실상 넷플릭스 등 외국계 플랫폼이 독점하는 구조에서 규모의 경제와 협상력을 확보하는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영신 미디어 산업 컨설턴트 겸 동국대 대우교수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에 기고한 '티빙-웨이브 통합, 국내 OTT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묻다' 글에서 "티빙과 웨이브가 넷플릭스가 차지하고 남은 시장을 두고 국내 1위를 위한 소모적인 콘텐츠 제작과 마케팅 경쟁을 벌여왔는데 합병 뒤 과열 경쟁을 멈추고 중복 투자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며 "주주 간 동의는 사업자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산업 생태계를 고려해 국민 기업인 KT의 대승적 결단과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