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정훈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파운드리 업계 1위 TSMC마저 미국의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대중 수출에 제약을 받는 반도체 기업이 한 곳 더 늘었습니다. 미국에 수조원대 투자를 단행한 기업들이 잇따라 규제 대상이 되는 가운데, 정작 미국은 협상 과정에서 거론된 관세 완화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사전에 합의한 15% 상호관세가 한미 정상회담 이후까지 명문화되지 않았고, 오히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VEU에서 제외되면서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부담만 가중되는 상황으로, ‘최혜국 대우’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워싱턴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미 우주사령부 본부 이전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TSMC의 VEU 지위를 취소했습니다. 이에 따라 TSMC는 중국 난징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들일 때 별도로 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다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12월31일까지 유예기간을 적용했습니다. 이에 대해 TSMC 측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상황을 평가하고 미국 정부와 소통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서, 난징 공장의 운영이 방해받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 정부의 잇따른 VEU 제외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에 따른 조치입니다. VEU는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을 규제하면서도 동맹국 기업의 중국 공장에는 한시적으로 적용을 유예하는 조항입니다. 이는 사실상 중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지만, 결과적으로 한국과 대만 등 우방국 기업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 됐습니다.
다만, TSMC 난징 공장의 경우 10여년 전 도입된 16나노 공정을 사용하고 있는데다, 전체 생산능력의 3% 수준에 그쳐 규제 강화에 따른 영향에 제한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삼성전자 중국 시안 공장은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30~40%, SK하이닉스 우시 공장은 D램 생산량의 40%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의 타격이 클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입니다.
미국의 중국 견제로 국내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제약은 계속되지만 수혜는 전무해 ‘최혜국 대우’ 약속에 대해서도 회의가 일고 있습니다. 앞서 한국은 미국과 15% 상호관세에 합의하며, 반도체 분야에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 이후로도 관세 협상이 명문화되지 않았고, 협상 결과는 감감무소식입니다. EU와는 협상 후 반도체에 대해 15% 관세를 부과한다고 명문화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주변국도 관세 협상 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합의에 없던 쌀 수입 확대, 농산물 관세 인하 등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대만은 한·일보다 높은 20% 관세를 부과받았고, 향후 관세가 20%인지, 기존 관세에 20%가 더해지는지에 대해서도 미국과 이견을 보였습니다. 사실상 미국과 우호적인 국가들이 협상 후에도 여진에 휘청이면서, 미국의 신뢰도도 훼손되는 양상입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최혜국 대우’를 약속해도, 결국 자국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미국은 당연히 국익이 우선이고, 국익을 위해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익을 위해서라면 관세를 포함해 뭐든 하겠다는 입장이다. 최혜국 약속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