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과대평가?…힘 달리는 중후장대 ‘강경 투쟁’

‘현장 파업=생산 중단’ 공식 깨져
강성보다 ‘실리’…이미지 관리도

입력 : 2025-09-16 오후 2:17:17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간접고용·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에 힘이 실릴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파업 참여율의 저조 등으로 생산 차질이 크게 빚어지진 않는 모습입니다. 자동화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와 조합원 인식 전환이 겹치면서 ‘강성 투쟁’보다 ‘협상력 확보’와 ‘이미지 관리’에 방점이 찍히는 분위기입니다. 
 
HD현대중공업 노조 집행부가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HD현중 노조)
 
16일 전국금속노동조합 HD현대중공업지부 자유게시판에는 집행부의 강경 투쟁 기조에 피로감을 나타내는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밤새 크레인 위를 지키는 지부장의 의지는 확인했지만 그만 내려와서 조합원들을 챙겨달라”, “계속하면 우리 성과금 까인다” 등입니다. 노조가 크레인을 점거했다는 뉴스에 달린 노조 비판 댓글들을 언급하며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이날 마침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임단협)을 타결한 현대차와 비교하는 글도 올라왔습니다. 
 
금속노조 현중지부는 지난 11일부터 파업에 돌입했지만, 참여율은 약 7%에 그쳤습니다. 7500여명의 조합원 중 500명 안팎만 파업에 동참한 셈입니다. 과거처럼 일제히 가세해 회사를 멈춰 세우는 ‘총파업’의 기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여율이 낮다 보니 파업이 장기화되는 국면에도 생산 차질은 거의 없었습니다. HD현중 측은 생산중단 공시를 따로 내지 않았습니다. 이는 조선업의 산업 구조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조선소는 자동차 공장처럼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어지는 라인이 아니라 수많은 블록을 병렬로 제작·조립하는 구조입니다. 일부 인력이 빠져도 공정을 재조정하면 납기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동화·디지털화의 진전으로 소수 인력만으로도 공정을 운영할 수 있고, 글로벌 공급망 확장으로 특정 사업장이 멈춰도 대체 공급선이 존재해 파업의 압박이 낮아졌습니다. 
 
조합원 구성 변화도 파업 약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노조원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정년이 가까운 조합원들은 파업으로 인한 위험 부담보다, 고용 안정과 복지 개선 등에 무게를 두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실제 노조원들의 요구도 과거 ‘정권 퇴진’ 같은 정치적 구호보다는 ‘성과급 인상’, ‘주 4.5일제 도입’, ‘근무 환경 개선’ 등 실질적 처우 개선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강경 투쟁으로 노조가 회사를 압박하기보다 협상과 고용 안정을 중시하는 ‘실리’ 기조가 확산되는 모습입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한화오션 등과 비교되며 잠정 합의안이 조합원 찬반 투표로 부결된 상황에서 현중 노조 집행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니 크레인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노조가 백척간두에서 임단협을 끌고 가는 상황인데 시대가 변한 만큼 기업의 노무관리도 변해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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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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