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산업 결산) 트럼프발 격변…조선 웃고 철강 울다

보호무역 파고 속 드러난 산업 체질
국가 전략 산업, ‘고부가 전환’ 성패

입력 : 2025-12-29 오후 3:02:18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2025년 국내 산업 지형을 관통한 키워드는 단연 ‘트럼프 리스크’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미국발 통상 압박과 산업 보호주의가 전면에 부상하면서, 글로벌 교역 질서는 다시 한번 거센 혼란에 빠졌습니다. 관세와 쿼터, 안보와 산업 정책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기업들은 연중 내내 전략 수정과 리스크 관리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같은 제조업이라도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조선업은 글로벌 수주 호황 속에 웃었지만, 철강업은 관세 장벽과 수요 둔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했습니다. 트럼프발 보호무역은 산업 전반을 흔들었지만, 대내외적 조건으로 기회를 얻은 업종과 직격타를 맞은 업종의 경계는 분명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백악관에서 새로운 관세 부과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해양 패권 앞세운 미…조선 ‘슈퍼사이클’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과 동시에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전면에 내세우며 ‘해양 패권 회복’을 핵심 국정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에너지 안보 강화와 해군력 증강, 동맹국과의 방산 협력 확대가 동시에 추진되면서 글로벌 해운·조선 시장의 수요 구조가 빠르게 바뀌었습니다. LNG 수송망 확대와 해상 물류 안정은 더 이상 민간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 차원으로 격상됐고, 선박 발주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한국 조선업은 이 흐름의 최대 수혜자로 꼽힙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중심으로 LNG 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친환경 선박 수주가 동시에 호조를 보이며 수주잔고는 빠르게 늘었고, 선별 수주 전략을 통해 수익성도 개선됐습니다. 고부가가치 선종 위주로 재편된 수주 구조는 단순한 물량 확대를 넘어 체질 개선의 결과로 평가됩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방산과 묶인 조선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진 업종”이라며 “2025년은 조선이 본격적으로 다시 날아오른 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반기 들어서는 원자력 분야 논의가 본격화되며 핵추진잠수함(핵잠)까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과의 전략 자산 협력을 언급하면서 핵잠을 포함한 해양 방산 영역에서의 역할 분담 가능성이 거론됐기 때문입니다. 김 단장은 “관세 협상이 문서화돼 공식 합의로 이어졌고 원자력과 핵잠 추진 분야에서 추가적인 성과까지 더해지면서 연말로 갈수록 트럼프발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덧붙였습니다.
 
핵잠은 당장의 수주보다는 중장기적인 산업 지형 변화의 신호로 해석됩니다. 원자로를 제외하더라도 잠수함 선체, 정밀 용접, 고강도 소재, 추진·소음 저감 기술 등은 높은 기술 장벽을 요구하며, 이는 한국 조선업이 보유한 핵심 경쟁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민수 조선에서 방산 조선으로, 다시 전략 자산 협력으로 이어지는 확장 가능성은 올해 조선업 호황의 또 다른 배경이 됐습니다. 한국 조선업이 사실상 ‘슈퍼 사이클’에 재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각) 본인 소유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황금 함대 계획을 발표한 뒤 퇴장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관세 벽에 막힌 철강…공급과잉까지
 
반면, 철강업계의 2025년은 고전의 한 해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직후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고율 관세와 쿼터 확대 방침을 재확인하며, 철강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강하게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자동차가 막판 협상 끝에 관세 부담이 일부 조정되며 숨통을 튼 것과 달리, 철강은 끝내 예외를 얻지 못하고 50% 관세가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알루미늄 파생 제품까지 관세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철강업계는 연중 내내 압박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중국발 공급 과잉이 본격화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중국산 저가 철강이 동남아와 중동 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가격 경쟁은 격화됐고, 한국 철강의 수출 단가는 지속적인 하방 압력을 받았습니다. 유럽연합(EU) 역시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쿼터 축소를 예고하며 철강 수출 환경 전반이 동시에 좁아졌습니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의 조강 생산량은 500만톤(t)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8% 감소했습니다, 올해 1~11월 누적 생산량도 5610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 줄었습니다. 조강 생산량은 철강산업 전반의 흐름은 물론 중소·중견사를 포함한 국가 철강업의 체력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꼽히는데, 이러한 감소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연간 조강 생산량은 6100만t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2010년(5891만5000t) 이후 15년 만의 최저치입니다.
 
철강업계는 현지 투자 확대와 고급 강종 전환으로 돌파구를 모색했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에는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김 단장은 “결국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빨리 이동했어야 했다”며 “산업 전환과 구조조정이 지체된 대가가 올해 한꺼번에 드러났다”고 평가했습니다. 저탄소·친환경 특수강처럼 ‘가격과 무관하게 필요한 제품’으로의 이동이 지연된 구조적 문제가 보호무역 국면에서 취약성을 키웠다는 분석입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지난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 미플린의 US스틸 공장을 방문해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조선과 철강의 엇갈린 성적표는 결국 산업 체질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조선은 기술 장벽이 높고 대체재가 제한적인 반면, 철강은 글로벌 공급 과잉과 가격 경쟁에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습니다. 김 단장은 “2025년은 각 산업이 얼마나 고부가가치 구조로 전환했는지가 성패를 가른 해였다”며 “트럼프발 보호무역은 그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촉매였다”고 강조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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