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곤충의 색깔 전략: 숨기거나 드러내거나

위장색과 경고색이 갈라놓는 곤충의 포식자 회피 방식

입력 : 2025-10-02 오전 8:38:26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애벌레는 보호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식별하기 어렵다. (사진=Wikipedia)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우중충한 무채색에서 현란한 형광색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의 곤충들은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습니다. 곤충들이 띠고 있는 색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입니다.
 
경고색(aposematism)은 그리스어 'apo(떨어지다)'와 'sema(신호)'에서 유래해 '멀리하라는 신호'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동물이 자신이 먹기 위험하다는 사실을 포식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전략입니다. 반대로 보호색(camouflage, cryptic coloration)은 프랑스어 'camoufler(숨기다)'나 그리스어 'kryptos(감추다)'에서 비롯되어, 동물이 주변 환경에 섞여 눈에 띄지 않게 함으로써 포식자의 주의를 피하는 소극적 회피 전략입니다.
 
두 색채 전략은 모두 생존을 위한 적응이지만, 하나는 드러내고 하나는 숨기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대조적입니다.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 “곤충 반포식자 색채에 대한 전 지구적 선택(Global selection on insect antipredator coloration)”에서 연구진은 전 세계 숲과 초원에서 1만5000여개의 인공 곤충 모형을 활용해 다양한 색이 생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적으로 확인했습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한 광범위한 실험
 
이 연구 프로젝트는 호주부터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북미까지 6대륙 21곳의 숲과 정글, 초원 등 다양한 서식지에서 서울대 강창구 교수와 목포대 화예린 교수를 비롯해 56명의 공동 연구자들이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실험 방식은 단순합니다. 연구팀은 세 가지 유형의 인공 나방 모형을 제작해 나뭇잎 위에 놓았습니다. 첫 번째는 배경색과 비슷한 칙칙한 갈색의 위장형이었고, 두 번째는 주황과 검정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경고색, 세 번째는 자연에서는 보기 드문 색상 조합으로 만든 이례적 경고색이었습니다. 각 모형 안에는 새들이 먹이로 삼는 애벌레를 넣었으며, 이후 어떤 모형이 더 자주 공격당하는지를 관찰했습니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서 모형마다 공격의 빈도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위장색이나 경고색 중 하나가 모든 생태계에서 유리하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고 ‘생태적 맥락(ecological context)’에 따라 색을 선택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즉 환경과 포식자, 먹이 생물군의 조합에 따라, 위장전략(camouflage)과 경고전략(aposematism)이 번갈아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를 주도한 호주 멜버른 대학 생명과학과 일리아나 메디나 구즈만(Iliana Medina Guzman) 박사는 일부 동물들이 포식자를 막기 위해 경고색 대신 위장색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한 답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하다면서 “포식자를 막는 데 가장 효과적인 색채 전략은 없지만 생태적 맥락이 중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했습니다.
 
색채의 생존 효과는 포식 압력과 환경에 따라 달라
 
연구 결과, 포식 강도의 정도와 환경 조건이 곤충의 색채 전략 성패를 크게 좌우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포식 압력이 낮은 환경에서는 경고색을 통해 '나를 먹으면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포식자들이 굳이 위험할 수 있는 먹이에 도전할 이유가 적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빛이 적거나 위장 먹이가 희귀한 환경에서는 배경에 섞여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장색이 더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곤충들이 선택하는 색채 전략은 단순히 ‘경고색이냐 위장색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포식 압력과 환경 조건의 조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 이번 연구 결과의 핵심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발견은, 가장 눈에 잘 띄는 색상이 경고색으로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실험에 사용된 ‘청록-검정’과 같은 이례적 경고색은 특정 조건에서는 경쟁력이 있었고,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는 오히려 더 자주 공격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밝거나 대비가 강한 색이 좋다’는 가정은 과학적으로 다시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적인 추적·관찰 필요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왜 어떤 곤충 종은 눈에 띄는 색을 채택했고, 어떤 종은 숨어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이번 연구는 그 질문에 대해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무수한 생태적 맥락이 전략을 결정한다”는 답을 내놓은 셈입니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인 영국 스완지 대학의 윌리엄 앨런(William Allen) 박사는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어떤 동물들이 왜 다른 동물보다 특정 방어 전략을 사용하는지 궁금해왔으며, 이번 연구는 동물 군집과 환경이 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인공 모형에 의존했기 때문에, 실제 살아 있는 곤충의 반응을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아울러 지리적 환경의 차이뿐만 아니라 곤충 간의 상호작용, 포식자 학습 효과, 계절이나 기상의 변화 등과 같은 요인들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추적·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DOI :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dr7368
 
경고색을 띤다고 해서 포식을 회피하는 데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논문이 실린 <사이언스> 최근 호 표지에 실린 사진. (사진=University of Melbourne)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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