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연일 고공행진 중인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30원대를 돌파하면서 외환당국이 공식 구두개입에 나섰습니다. 한·미 관세 협상이 난항인 가운데, 미·중 무역 갈등까지 재점화하자 원화 약세 압력이 가팔라진 것입니다. 외환당국은 원·달러 환율이 5개월여 만에 1430원대로 올라서는 등 변동성이 확대되자 구두개입으로 환율 방어에 나섰습니다.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은 지난해 4월 이후 약 1년6개월 만입니다.
환율, 5개월 만에 1430원대…당국, 1년6개월 만에 '구두개입'
1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9.0원 오른 1430.0원에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1430원의 개장가는 장중 고가 기준으로 지난 5월2일(1440.0원) 이후 5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입니다. 원·달러 환율은 개장 직후 1425.6원까지 하락했다가 다시 1427~1428원 사이를 오가는 등 변동성이 확대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후 오후 들어서 다시 1430원대로 급등하더니, 장중 한때 1432.2원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외환시장 변동성이 극심해지자 외환당국은 공식 구두개입에 나섰습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은 이날 오후 공식 메시지를 통해 "외환당국은 최근 대내외 요인으로 원화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시장의 쏠림 가능성 등에 대해 경계감을 가지고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구두개입은 보유한 달러를 사고파는 직접 개입과 달리,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메시지를 통해 환율 급등락을 줄이는 정책 수단입니다.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은 중동 지역 정세 불안으로 환율이 1400원 부근까지 오른 지난해 4월16일 이후 약 1년6개월 만입니다.
당국의 개입 이후 1430원대까지 치솟던 원·달러 환율은 1427원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이후 전 거래일보다 4.8원 오른 1425.8원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다만 여전히 변동성이 큰 모습을 보이며 등락을 거듭, 1430원선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엎친 데 덮친 격' 미·중 갈등까지…'겹악재' 환율 상승 부채질
최근 들어 연일 환율이 치솟는 배경에는 우선 대미 투자 불확실성에 따른 관세 협상 장기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대미 투자의 규모와 방법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 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관세 협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환율 상승을 부추겼다는 분석입니다.
여기에 미·중 무역 갈등이 재점화하면서 환율 상승 압력이 가팔라졌습니다. 실제 지난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움직임을 '적대적 행위'로 규정하며 "다음 달 1일부터 중국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여파에 뉴욕 3대 증시는 일제히 급락했고, 나스닥 지수도 3% 넘게 하락했습니다. 다만 그는 다음 날 "중국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며 유화적 메시지를 내놔 중국과의 협상이 열려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습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서 높은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전망합니다. 특히 이달 말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전까지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이 어려울 것으로 관측하면서 환율 변동 폭이 확대될 것으로 내다봅니다. 바꿔 말하면 관세 협상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당분간 환율 불안을 잠재우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문홍철 DB증권 연구위원은 "원·달러 환율에 대미 투자 불확실성이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현 상황만 놓고 보면 환율은 지금이 저점일 수 있다"면서 "결국 환율 하방 재료는 한·미 투자 협상 타결뿐인데, 협상 미타결이 이어진다면 전고점 기준으로 1450원이 1차 상단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미중 무역전쟁 우려 재확대에 따른 아시아 통화 약세, 위험선호 심리 훼손 등 영향에 하반기 고점 갱신이 예상된다"며 "원화의 경우 1420원대 2차 저항선 붕괴로 연휴 간 예열이 완료된 역외 롱플레이까지 가세하면서 장중 상방 변동성 확대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나마 달러·원 상승을 방어해주던 증시에서의 외국인 투심이 순매도로 전환할 가능성도 환율 상승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국익을 최우선으로 대미 관세 협상 후속 조치를 추진하고, 환율 등 외환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중 무역 갈등 재점화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를 돌파하자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에 나선 가운데, 13일 오후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