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국회가 추진하는 천주교 세계청년대회(WYD) 지원 특별법에 대해 이웃 종교들의 반발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정 종교 행사를 위한 특별법은 종교 간 형평성을 해치고,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에도 반한다는 겁니다. 역대 WYD를 개최했던 브라질과 폴란드 등의 국가에서도 특별법이 제정된 바 있지만, 이들 국가는 사실상 ‘가톨릭국가’로 분류,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한국 상황과 다르다는 지적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등 국내 5대 종단을 포함한 종교·시민단체들의 모임인 범종교개혁시민연대는 23일 성명을 내고 공식적으로 ‘2027 서울 WYD’ 지원 특별법안 반대 입장을 밝힐 계획입니다. 이들은 천주교가 개최하는 행사에 대해서 국회가 특별법까지 제정해 정부가 지원하는 건 특정 종교 편향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더구나 특별법 제정은 정교분리 원칙의 헌법 정신을 위배하는 조치라는 입장입니다. 헌법 제20조 2항엔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서울 WYD는 전 세계 청년들이 모이는 신앙과 문화 교류의 장으로 환영할 만한 행사지만, 그 지원 방식이 헌법 정신에 반하는 재정적·법률적 특혜로 이뤄져선 안 된다는 겁니다.
지난해 7월28일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발대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천주교 서울대교구)
특히 시민연대 측은 성명을 통해 “국회에서 추진 중인 WYD 특별법은 조직위원회 운영 주체를 특정 종교단체로 명시하고, 국가가 포괄적인 지원을 제공하도록 규정해 위헌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국가가 종교 행사의 운영비나 프로그램 비용을 직접 지원하는 건 명백한 정교유착”이라며 “특별법 제정으로 헌법이 금지하는 정교유착 선례를 만들어선 안 된다”고 주장할 예정입니다.
또 “국가 재정으로 특정 종교 행사의 시설을 건립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앞서 프랑스나 캐나다 등의 국가들도 (WYD 지원을) 기존 공공 인프라 활용이나 도시 인프라 개선 차원의 공적 지원에 한정했다. 정부는 경기장이나 공원, 교통시설 등 공공시설 활용을 위한 최소한의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할 방침입니다. WYD 지원이 공공 인프라 활용으로 제한돼야 한다고 겁니다.
그러면서 “서울 WYD가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개최돼 종교의 자유와 국가의 중립성이 실현되는 모범사례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대회를 준비하는 조직위원회도 서울 WYD를 통해 이웃 종교들과 진정으로 평화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협력 증진 등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앞서 국회에서는 WYD 특별법이 모두 세 건 발의됐습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과 박수현 민주당 의원,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 등 국회의원 33명은 지난 8월 정부 차원의 WYD 지원 근거를 마련한 특별법을 발의했습니다. 지난해 11월7일에는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과 김병기 민주당 의원이, 같은 달 19일에는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관련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바 있습니다. 현재 세 법안 모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 중입니다.
세 법안 모두 서울 WYD에 최소 40만명, 최대 100만명의 대규모 인원이 집결할 것으로 전망하며 범정부 차원의 지원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만큼 재난·안전 관리, 감염병 예방과 대응, 전국적인 이동 대책 등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에 정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구성한 ‘서울 WYD 조직위원회’와 함께 정부지원위원회를 설치해 행사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러면서 조직위가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 행정적이고 재정적인 지원과 편의 제공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 특별법 사이에 정부지원위원회 위상과 지원 범위 등과 관련해 차이도 있습니다. 앞선 김상훈·김병기 의원 발의안과 성일종 의원 발의안에서 정부지원위는 국무총리 산하로, 위원장은 국무총리가 맡도록 했습니다. 반면 최현두 의원 등의 발의안에선 일부 불교계 의견을 반영해 정부지원위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산하로, 위원장도 문체부 장관으로 변경됐습니다. 성일종 의원 법안에는 다른 발의안들과 달리 서울 WYD 이후에도 순례지 관련 전시관과 체험관, 편의시설 등을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간 특별법에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낸 건 불교인 조계종이었습니다. 조계종 측은 국회에 WYD 지원 특별법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조계종은 지난달 25일엔 입장문을 통해 “WYD가 국제 청년 교류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내용상 종교 행사”라며 “특정 종교의 교리 전파나 선교 활동 행사에 국민 세금을 사용하는 건 노골적인 특혜”라고 했습니다.
일각에선 특별법 제정 없이도 정부가 재정적·행정적으로 서울 WYD 개최를 지원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문체부 소관의 종교문화활동 지원 사업으로 WYD 개최와 운영 예산을 지원하고, ‘국제회의산업 육성법’과 ‘관광진흥법’ 등 기존 법률 내에서 안전과 교통 등 공공부문 운영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종교단체 관계자는 “대회를 준비하고 개최하는 데 특별법 제정이 유리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특별법 없이도 충분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 “다른 종교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일 없이 무리하게 추진하면 반발만 키우고 향후 대규모 종교행사 개최 때마다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