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생물분자학적 방법으로 확인 직후 촬영한 1층 I23 구역(Z00113)에서 발견된 호미닌의 뼈 조각 사진. (B) 호미닌의 뼈 조각의 미세CT 스캔 이미지. 단백질 분석을 통해 연구진은 크림 반도의 화석이 네안데르탈인의 것임을 확인했다. (사진=PNAS)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동유럽의 크림반도(현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출토된 오래된 호미닌(Hominin) 뼈 조각 하나가 인류의 기원사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호미닌이란 인류학에서 중요한 개념인 호미니드(Hominid), 즉 사람과 그 가까운 ‘사람과류(科)’(Hominidae) 가운데 인간과 인류의 직접 조상 계열만을 지칭합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오스트리아 빈대(University of Vienna)의 고고학자 에밀리 피곳(Emily Pigott) 연구진이 10월27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이 호미닌 뼈는 약 4만6000년 전 네안데르탈인(Neandertal)의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지역의 네안데르탈인들과 유전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발견은 유럽에 살던 네안데르탈인들이 최대 3,000km 이상을 동쪽으로 이동하며, 아시아 깊숙이까지 진출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로 평가됩니다.
‘유전자 지도’가 그린 이동의 흔적
연구팀은 크림반도 스타로셀레(Starosele) 암석굴에서 수십 년 전 발굴된 뼈 조각을 단백질 분석으로 식별한 결과, 그것이 네안데르탈인의 다리뼈 일부임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분석하자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DNA는 러시아 알타이 지역의 세 곳 유적지에서 출토된 네안데르탈인 화석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네안데르탈인 어머니와 데니소바인(Denisovan)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하이브리드 여성과도 밀접한 유전적 연관을 보였습니다. 연구진은 “이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걸친 네안데르탈인들의 문화적·생물학적 네트워크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면서 “이들이 유럽과 아시아 사이를 오가며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및 데니소바인과 교류하고, 때로는 교배까지 이루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뜻해진 기후가 만든 ‘이동의 창’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 이번 화석은 약 4만5000~4만6000년 전으로 추정됐습니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이 유럽에서 사라지기 직전 시기입니다. 기후학적 분석에 따르면, 이 시기는 빙하기가 잠시 물러난 따뜻한 간빙기(warming interval)였습니다. 연구진은 “약 12만~10만년 전, 그리고 6만년 전경의 온난기에는 동서 이동이 훨씬 쉬워졌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얼음으로 뒤덮인 유라시아에 이동의 창이 열렸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네안데르탈인들은 말을 사냥하며 유라시아 대평원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크림 반도의 스타로셀레 유적에서도 발견된 수백 점의 말 뼈는 그 증거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의 ‘문화적 발자국’도 찾았다
이번 연구는 유전학뿐 아니라, 석기 제작 기술에서도 흥미로운 일치를 보여줍니다. 크림반도와 알타이 지역의 석기 도구들은 형태와 제작 방식이 거의 동일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이동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술과 문화가 함께 확산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DNA와 석기는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생각보다 훨씬 지적이고 유연한 존재였다”것이 연구진의 평가입니다. 한때 네안데르탈인은 ‘멸종된 유럽의 원시인’으로만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축적된 유전학 연구는 그런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고 있습니다.
2010년대 초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가 공개한 네안데르탈 게놈 해독 결과에 따르면, 오늘날 비(非)아프리카계 인류의 DNA 중 약 1~2%는 네안데르탈 유래입니다. 즉, 그들은 이미 수만 년 전부터 다른 인류와 섞이며 진화의 일부를 이룬 존재였습니다. 이번 크림반도 연구는 그 퍼즐의 또 다른 조각을 채운 셈입니다.
“이제 네안데르탈인은 고립된 동굴 속 종족이 아니라, 기후의 변화에 따라 유라시아를 횡단한 인류사적 주인공으로 다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피곳 교수는 사이언스 뉴스(Science News)와의 인텨뷰에서 말했습니다. 네안데르판인들의 발자취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그 미래가 궁금합니다.
DOI: https://doi.org/10.1073/pnas.251897412
크림 반도에 위치한 스타로셀레(Starosele), 시우렌 I(Siuren I), 카바지 II(Kabazi II), 카바지 V(Kabazi V), 초쿠르차(Chokurcha) 유적지 위치. 빨간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색상은 해발 1,000m 이상에 달하는 첫 번째이자 가장 높은 산맥을 나타낸다. (사진=PNAS)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