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신비로운 ‘산의 왕’이 기후변화와 인간 활동으로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리고 있습니다.

 

세계자연기금(WWF)은 10월23일 ‘세계 눈표범의 날(International Day of the Snow Leopard)’을 맞아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구 온난화로 인해 2070년까지 눈표범의 서식지 최대 23%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눈표범은 중앙아시아와 히말라야의 해발 3000~4500m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이들은 혹한과 절벽, 희박한 산소 속에서도 살아남은 생태계의 ‘완벽한 생존자’로 불리지만, 최근 환경은 이들에게 점점 가혹해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은 히말라야 설상 지형의 구조를 바꾸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푸른양(Blue Sheep)이나 아이벡스(Ibex) 같은 주요 먹이 종의 분포가 이동하거나 감소하고, 결과적으로 먹이망과 번식지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또한 광산 개발과 수력발전, 관광 인프라 확충 등을 위한 도로 건설이 산악지대 깊숙이 진입하면서 서식지가 단절되고 이동 경로가 차단되는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몽골 남고비 지역에서는 채굴 라이선스가 눈표범 서식지 파괴로 이어질 위기에서 현지 환경운동가들의 활동으로 이 지역에 광대한 보호구역이 지정됐고, 채굴허가가 철회되기도 했습니다.

 

눈표범은 현재 전 세계에 약 4000~6500마리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IUCN(국제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에서 ‘취약종(Vulnerable)’으로 분류되며, WWF 조사에 따르면 매년 약 220~450마리의 눈표범이 불법 사냥이나 보복 살해로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눈표범은 뛰어난 신체 구조로 혹독한 자연환경을 버텨냅니다. 등에 약 5cm, 복부에는 12cm에 달하는 긴 털이 체온을 유지하고, 길이 1m에 이르는 꼬리는 균형을 잡는 동시에 담요처럼 몸을 감싸며 보온 역할을 합니다. 짧은 앞다리와 강한 뒷다리는 몸 길이의 6배인 약 9m까지 도약할 수 있게 해 절벽과 협곡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습니다. 발바닥의 두꺼운 털은 천연 눈신처럼 작용해 눈 위에서도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회색빛 털과 희미한 반점 무늬는 눈과 바위를 닮아, 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도 쉽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조용하고 은밀한 특성 덕분에 사람의 눈에 거의 띄지 않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눈표범을 ‘설산의 유령’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눈표범의 감소는 단순히 한 종의 멸종이 아닙니다. WWF는 “눈표범은 고산 생태계의 핵심종이자 생태 건강을 보여주는 지표종”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들이 사라지면 초식동물의 개체 수가 급증해 초원과 산림이 훼손되고, 이 생태계에 의존하는 수많은 생명체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국 눈표범의 위기는 곧 고산 생태계 전체의 위기입니다.

 

WWF는 중앙아시아 각국 정부와 지역사회, 전문가들과 협력해 눈표범 보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동부 히말라야 지역에서는 포식자 방지 울타리 설치, 가축 피해 보상 보험제도 운영, 생계 다변화 사업 등을 통해 사람과 눈표범의 갈등을 줄이고 있습니다. 또한 불법 밀렵 단속 강화, ‘온라인 야생동물 밀매 종식 연합(Coalition to End Wildlife Trafficking Online)’ 운영을 통해 불법 거래 근절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과학적 접근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WWF는 인도·몽골·부탄 등에서 눈표범 개체수 조사와 유전자 분석을 지원하고 있으며, 그 결과 부탄에서는 2016년 대비 2023년 눈표범 개체수가 39.5%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한 GPS 위성추적 목걸이를 활용해 눈표범의 이동 경로와 서식지 이용 패턴을 분석하고, 환경 DNA(eDNA) 기술로 물이나 토양에 남은 유전자를 통해 직접 관찰 없이 서식 여부를 파악하는 등 과학 기반의 보전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WWF 한국본부는 “눈표범은 설산 생태계의 건강을 보여주는 거울”이라며 “그들의 서식지를 지키는 일은 단순한 야생동물 보호를 넘어 지구의 생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눈표범의 생존은 결국 인류가 살아가야 할 환경의 미래와 맞닿아 있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