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 중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미국·프랑스 등 해외 주요국 사례를 보면, 대통령이 재임 기간 형사 책임을 면제받는 건 특이한 일은 아닙니다. 법조계도 민주당의 이른바 ‘재판중지법’ 취지에는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방탄 역풍’이 불 우려가 있는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앞. (사진=뉴시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재판중지법은 형사소송법 제306조 6항을 신설하는 겁니다. 새로 들어가는 내용은 ‘피고인이 대통령선거에 당선된 때에는 법원은 당선된 날로부터 임기종료 시까지 결정으로 공판절차를 정지해야 한다’입니다. 대통령이 내란·외환의 죄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제84조를 더 구체화한 겁니다. 즉, 소추 범위를 기소뿐 아니라 재판까지 명시적으로 규정했습니다. 개정안은 ‘이 법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하한다’, ‘이 법 시행 당시 대통령에게도 적용한다’는 부칙이 있습니다. 개정안이 이 대통령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개정안은 지난 5월1일 대법원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바로 다음날 발의됐습니다. 직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현재 본회의에 부의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당시 21대 대선 후보였던 이 대통령 만류함에 따라 민주당의 법 개정 움직임은 중단된 바 있습니다.
재판중지법에 다시 불씨를 지핀 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입니다. 김 법원장은 지난달 20일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이 대통령의 선거법 파기환송심을 임기 내 진행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의를 받고는 “이론적으로 그렇다(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아울러 지난달 31일 대장동 일당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1심 선고로 이 대통령이 대장동 의혹에 연루됐다는 주장이 다시 불거지자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 재판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민주당에서 또 재판중지법 개정을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일단 주요 해외 사례를 보면, 주요 대통령제 국가들에서도 현직 대통령에게는 형사 책임을 묻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죄를 저질렀다면 탄핵 절차를 진행토록 합니다.
미국은 헌법에 대통령의 형사 소추 면제를 규정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법무부는 오랫동안 현직 대통령 기소는 위헌이란 정책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에 2024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된 뒤엔 주요 연방 형사 사건들이 취소되거나 중단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성 추문 입막음 돈 지급’ 사건 재판만 진행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대통령 당선자의 형사소송 면책특권을 주장했으나, 사건을 담당한 후안 머천 판사가 거부했습니다. 머천 판사는 지난 1월 당선자 신분이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다만 ‘무조건적 방면’을 통해 대통령직을 수행하게끔 했습니다. 머천 판사는 이에 대해 “국가의 최고 직위를 침해하지 않는 유일한 합법적 선고”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 운영을 보장하겠단 취지입니다.
헌법에 대통령 재임 기간 재판 중지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나라는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2007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이 재임 기간 동안 형사 및 민사 소추는 물론 증언 요구, 수사 조치 등 어떤 법적 절차도 받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가 종료되면 면책 특권은 사라집니다. 재판도 재개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직 수행과 양립할 수 없을 정도로 책무를 위반한 경우라면 대통령 파면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겁니다.
프랑스의 개헌 과정은 현재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합니다. 개헌 당시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과거 파리시장 시절 부패 스캔들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해당 사건으로 시라크 대통령 측근들이 중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시라크 대통령은 ‘직무수행 이외 또는 취임 전 위법행위에도 재임 동안 소추되지 않는다’는 개헌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개헌에 앞서 1999년과 2001년 각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개헌안과 같은 취지의 판결로 시라크 대통령이 이미 면책권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물론 그는 퇴직한 뒤 2011년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유죄를 받은 전직 대통령이 된 겁니다.
이러한 주요국 사례에 따라 법조계에서도 재판중지법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충돌할 때 국민의 주권적 의사가 법률의 의사보다 우위에 있다”며 “대통령 임기 동안 재판 중지는 입법이 아니어도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이 속도 조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거법 사건처럼 당장 재판이 열릴 상황이 아닌데, 대장동 선고 직후 바로 개정에 나서는 건 방탄 여론만 조성할 수 있다”며 “사법개혁처럼 필요한 일인데도 민주당의 속도 조절 실패로 부정 여론만 형성돼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