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계엄 이후로 하느님께서 특히 많이 바쁘시다. 서울구치소 윤석열 피고인 수용실에 특별히 임하시어 윤 피고인의 간절한 기도에 귀 기울이시는 한편,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무려 2년 동안이나 생각나지 않아 괴로워하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기적처럼 떠올리게 하는 대역사에도 왕림하시는 등 전 정부 폭정 관련자들의 하느님 물고 넘어지기가 잦다.
공교롭게도 특검이 임 전 사단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날 스무 자리의 비밀번호를 기억하게 하셨으니 이 얼마나 대단하고 놀라운 일인가. 임씨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비밀번호를 기억해낸 뒤 입장문이란 걸 내고 다음과 같은 간증성 고백과 변명을 했다.
“잊어버린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찾아내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시도를 거듭했지만 실패를 거듭하다가 오늘(10/20) 새벽 2시30분께 기적적으로 비밀번호를 확인했다. 오늘은 제가 신앙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가호를 느끼게 된 날”이라고. (“셀 수 없는 실패 끝에”? 비번이 일정 횟수 이상 틀리면 제한이 있는 거 아닌가? 어째 첫 줄부터 ‘진술’이 이상하다.)
휴대전화 비번 제공을 끝내 거부하며 수사를 방해했던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도 신앙심을 돈독히 함으로써 하느님의 가호와 은혜로 비밀번호를 기억해내면 좋겠다. 그의 비번도 스무 자리라고 했는데, 이번에 임씨를 보니 하느님은 스무 자리쯤은 어렵지 않게 도와주시는 모양이다. 극강이라는 아이폰 보안 체계도 하느님과 신앙심 앞에서는 무기력해지는 게 확인됐으니 애플사는 보안 체계 강화를 위해 더 분발해야 할 것 같다.
윤 피고인은 지난 7월 재구속된 이후 오로지 성경과 기도의 힘만으로 환란과 시련을 이겨내며 영어의 시간을 버티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그를 면회하고 온 장동혁 국힘 대표의 말이니 믿어줘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장 대표는 법관 출신이다. 대한민국에서 법관은 지엄한 권위, 존귀한 신뢰의 상징 아니던가.
윤 피고인에게 임하시는 하느님은 굉장히 너그러우신 게 확실하다. 손바닥에 왕(王) 자 쓰고 다니거나, 공사 불문하고 무속인들 중히 여겨 그들의 교언에 의지하고 인사 청탁까지 덥석덥석 받아주더라도 못 본 척 눈감아주셨으니 말이다.
단군 이후 최고(?)의 검사이자 검찰총장-대통령까지 지낸 자. 귀신 잡는 해병대의 꽃이자 전사(戰士) 중의 전사라는 해병대의 최정예 사단장을 지낸 자. 이들은 이렇게 터무니없고 형편없는, 비겁하고 졸렬한 사람들인가. 나라를 자폭시킨 계엄의 책임을 부하들에게 죄다 떠넘기고, 힘없는 교도관에게 호통이나 치고, 수사와 재판에 불응하고, 2년간 휴대전화 비번을 모른다고 잡아떼며 수사를 방해하고, 스무 살 꽃다운 부하 해병의 생때같은 죽음을 잔인하게 짓밟은 이들에게 가차 없는 법의 심판이 내려지고, 가석방이나 감형 없는 만기 집행이 반드시 관철되기 바란다. 뻔뻔하게도 하느님을 들먹이는 저들에게 매사 공정한 하느님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게 해주기 바란다. 임성근씨는 명색 대한민국 장성에 ‘멋쟁 해병’회 멤버이기도 하다니 양심 불량에 따른 가중처벌이 당연한 거 아닐까. 엄한 군율로 다스리는 게 나라의 정기를 확인하는 게 마땅하다.
하다하다 못해 이제는 하느님까지 팔아가며 자신들의 잘못과 죄를 떠넘기는 저들을 보자니 가관을 넘어 가증스럽다. 모세의 십계명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명토박혀 있다. 교계에 문의하고 싶다. 성서 속 구절로서가 아니라 실재하는 교계 율법에 ‘하느님 사칭죄’는 없는지.
이강윤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