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현대차그룹이 엔비디아로부터 5만장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하기로 하면서 완성차 기업이 반도체 기업 수준의 ‘기술 생존 전략’을 요구받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기름만 넣으면 달리던 자동차는 인공지능(AI)과 초고속 통신의 시대에 접어들며, ‘이동하는 고성능 컴퓨터’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자율주행과 AI 비서, 차량 내 소프트웨어를 처리하는 핵심 연산 장치인 GPU를 얼마나 빠르고 많이 확보하느냐가 곧 완성차 경쟁력을 좌우하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완성차업계가 앞다퉈 엔비디아와 협력을 강화하려는 경쟁이 본격화했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 참석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엔비디아와의 협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습니다. 테슬라는 지금까지 엔비디아의 H100·200 등 최신 GPU 10만장 이상을 확보했으며,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로 구매량을 늘리고 있습니다. GM 역시 올해 초 엔비디아와 손잡고 자율주행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폴크스바겐, 메르스데스-벤츠, 볼보 등도 GPU 기반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플랫폼 구축을 위해 엔비디아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자율주행과 AI 비서 등 SDV 기술을 놓고 경쟁 강도를 더욱 높이고 있습니다. SDV는 말 그대로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차량 내 각종 장치를 관리·제어하고 주행 성능과 편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차량을 말합니다. SDV를 구현하려면 AI 연산을 처리할 고성능 GPU가 필수입니다. 차량에는 차간 거리 등을 감지하는 수십 개의 센서와 카메라 등이 실시간으로 작동하는데, 이를 통합해 판단하는 '두뇌' 역할을 GPU가 맡고 있습니다. GPU는 초당 수십조 번의 연산을 수행할 수 있어 차량 내 수많은 센서 데이터, 고정밀 지도, AI 판단 시스템을 실시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글로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GPU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GPU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완성차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가 젠슨 황 CEO와의 논의 끝에 블랙웰 등 슈퍼칩 GPU 5만장을 확보한 것은 SDV 전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출발점으로 평가됩니다. 특히 공급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대량 선점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업계 관계자는 “GPU는 자율주행 성능뿐 아니라 차량 내 서비스, AI 비서 구현까지 좌우하는 자동차의 새로운 경쟁력”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현대차의 자율주행 기술은 일부 글로벌 업체 대비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현대차는 2027년까지 레벨2+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을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혼다는 이미 2021년 세계 최초로 레벨3 차량을 출시했고, 2022년 메르세데스-벤츠는 S클래스에 레벨3을 적용한 모델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현대차 역시 블랙웰 등 GPU를 활용해 차량 내 디지털 서비스 고도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완성차 기업들이 SDV 중심으로 진화하면서 차량 내부에서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폭증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엔비디아 등 글로벌 GPU 공급망에 대한 접근력은 기업의 AI 역량과 기술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GPU를 단순한 반도체 부품이 아니라 AI 기반 차량 운영 시스템의 엔진으로 봐야 한다”며 “앞으로 GPU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가 미래 자동차 산업의 기술 우위와 국가 경쟁력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