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제주항공 참사 1년…‘둔덕 허문다더니’ 개선 작업 하세월

철거 및 교체 필요 7곳 중 2곳 완료
여수공항 4m 콘크리트 둔덕 ‘여전’
제주공항 철골 내년 8월에나 제거

입력 : 2025-11-11 오후 4:36:06
[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089590) 여객기 참사가 다음 달이면 1년을 맞는 가운데, 국토교통부는가 사고 재발을 막겠다며 전국 공항의 항행안전시설물 개선에 나섰지만, 현장에는 ‘콘크리트 둔덕’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연내 개선 완료를 약속했던 정부의 계획과 달리, 철거와 교체 작업이 필요한 7개 공항 중 절반도 마무리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0개월이 지난 현재, 전체 개선 작업의 3분의 1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주먹구구식의 항공 안전 대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지난해 12월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전날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여객기의 잔해와 동체 착륙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진=뉴시스)
 
11일 <뉴스토마토>가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제주항공 참사 이후 개선 작업이 필요한 7개 공항에 대한 진행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참사 1년이 다 돼가는 11월 현재까지 정부의 개선 작업은 절반의 성과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현재까지 공사가 완료된 곳은 광주와 포항경주, 단 두 곳에 불과합니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 1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전국 13개 공항의 항행안전시설물 위치와 구조를 전수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광주, 여수, 포항경주, 김해, 사천, 제주 등 7개 공항에서 항공기 충돌 시 쉽게 부러지지 않아 피해를 키울 우려가 있는 콘크리트 둔덕과 방위각시설물(로컬라이저)이 확인돼 국토부가 “올해 안으로 개선을 마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철거가 끝난 곳은 광주와 포항경주뿐이며, 여수·김해·사천·제주 등 나머지 4곳은 여전히 콘크리트 둔덕과 기초대 등 구조물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여수공항은 아파트 1층보다 높은 4m의 콘크리트 둔덕이 여전히 활주로 끝자락에 견고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김해와 사천공항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두 공항 모두 로컬라이저를 떠받치는 콘크리트 기초대 일부가 땅 위로 솟아 있어 교체 필요성이 지적됐습니다. 김해공항의 경우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기간을 앞두고 국토부가 임시로 아스팔트 콘크리트를 덮어 급히 정비했지만, 해당 구간은 다시 수억원을 들여 철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로컬라이저는 여객기를 향해 고도와 위치 등을 전파로 쏴서 항공기가 안정적으로 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국토부와 한국공항공사는 김해공항 36L 활주로 구간의 성토(땅을 높이기 위해 흙을 쌓는 것) 제거 작업을 오는 12월까지 마치고, 반대편 36R 활주로 방향의 80cm 높이 콘크리트 기초대 철거는 내년 1월에 착수한다는 방침입니다. 사천공항도 06L 활주로 방향에 남은 60cm가량의 콘크리트 돌출부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아, 반대편 24R 구간의 기초대 철거 작업 역시 내년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공사는 김해와 사천의 경우 돌출부를 제거하고, 이 자리에 부러지기 쉬운 알루미늄 구조로 교체한다는 계획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제주공항은 로컬라이저가 H형 철골 구조로 설치되어 있어 충돌 시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국토부는 07번 활주로 방향의 H형 철골 구조를 부러지기 쉬운 것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용역이 현재 진행 중에 있습니다. 착공은 내년 8월에나 가능합니다. 반대편 25번 활주로의 노후화된 방위각 시설물 교체 작업이 내년 4월까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국토부와 한국공항공사의 설명입니다. 
 
이처럼 총 7곳 가운데 5곳의 시설 개선이 지지부진하면서, 연내에 방위각 시설을 개선하겠다던 국토부의 약속은 결국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개선 마무리는 내년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입니다. 당초 국토부가 올해 안에 공사를 마무리하겠다고 한 것은, 전 국민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항 안전시설에 대한 정비가 분초를 다툴 정도로 시급한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당초 사고 원인인 로컬라이저 설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국토부가 그 개선에도 제자리걸음을 보이면서, 안전 우려는 오늘도 여전한 상황입니다. 
 
권보헌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안전을 위해 빠른 개선이 필요하다”며 “대책 발표 당시 예산까지 확보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사 일정이 지연되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고 지적했습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도 “사고 직후에는 안전 강화 대책이 신속히 추진될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현장은 행정 절차 등으로 속도가 더디다”며 “사고로 얻은 교훈이 큰 만큼 후속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앞서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은 지난 6월 성명서에서 “7개 공항에 잘못 설치된 로컬라이저 구조물이 즉각적인 철거를 재차 요구한다”며 “해당 공항들은 로컬라이저 안테나가 없어도 대체 착륙 접근 절차가 운영되고 있어 로컬라이저를 즉각 철거해도 항공 안전에 큰 영향은 미미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한편, 활주로종단안전구역 확보가 어려운 사천·울산·포항경주공항에는 활주로이탈방지시설(EMAS) 설치 계획이 추진 중이지만, 이 역시 용역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EMAS는 항공기가 착륙 후 활주로를 벗어날 경우 타이어가 경량 재질에 파묻혀 마찰력이 발생하면서 속도를 줄이는 장치로, 활주로 이탈 사고를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국토부는 추가로 원주공항에도 EMAS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활주로종단안전구역은 항공기가 착륙 후 제때 멈추지 못하고 활주로 끝부분을 지나쳤을 경우 항공기 손상을 막기 위해 착륙대 종단 이후에 선정된 구역을 말합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술 검토와 설계·발주·계약 절차를 거치다 보니 시간이 다소 소요되고 있다”며 “기상 여건과 추경 반영 일정 등의 영향으로 일부 지연이 있지만, 연내 마무리 계획은 크게 변함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12월29일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여객기 7C2216편은 태국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출발해 무안공항에 오전 9시3분께 동체 비상착륙을 시도하다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하며 폭발했습니다. 이 사고로 179명이 사망하고 2명이 구조됐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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