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로봇, 디지털트윈으로 대표되는 기술혁신이 선박 건조 현장을 근본부터 재편하고 있습니다. HD현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의 스마트 조선소 구축 전략을 통해 한국 조선업이 어떻게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가는지 살펴봅니다._편집자 |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조선소 한쪽 도크에서 사람처럼 움직이는 로봇이 불꽃을 튀기며 선체를 따라 움직입니다. 머리에는 비전 카메라가 달려 있고, 팔 끝 센서는 용접선을 따라 미세하게 궤적을 조정합니다. 작업자는 더 이상 불빛 옆에서 직접 용접하지 않습니다. 모니터 앞에서 로봇들이 만드는 데이터 흐름을 관리합니다. 마치 영화 <아이언맨> 속 토니 스타크의 작업실을 옮겨온 듯한 풍경입니다. AI가 설계부터 용접·조립까지 로봇 팔을 제어하던 ‘자비스식 스마트팩토리’. HD현대가 구현 중인 2030년형 ‘지능형 자율운영 조선소(Future of Shipyard·FOS)’의 모습입니다.
HD현대 울산조선소에서 용접중인 휴머노이드 로봇의 모습을 챗GPT로 생성했다. (사진=챗GPT)
AI가 명령하고 로봇이 만든다
HD현대는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조선소 전체를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움직이는 ‘유기체’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여기서 AI와 데이터 시스템은 두뇌, 휴머노이드 로봇은 팔 역할을 맡습니다. AI가 설계·생산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도크에 어떤 작업을 배치할지 판단하면, 휴머노이드가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깁니다. 즉 FOS란 AI가 명령을 내리고, 로봇이 그 판단을 현장에서 수행하는 구조입니다.
이같은 변화는 조선소 자동화의 오랜 숙제인 ‘설계–현장 간 오차’를 해결하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조선소는 자동차 공장처럼 표준화된 라인이 아니라, 배 한 척 한 척이 모두 다릅니다. 선체 철판은 가공할 때 열로 뒤틀리고, 대형 선박 건조는 거대한 도크나 육상 건조장에서 진행돼 매번 작업 환경이나 자재 배치가 완벽하게 동일하기 어렵습니다. 컴퓨터상 설계도면(CAD)이나 PPR(제품·공정·자원) 모델이 아무리 정밀해도, 실제 현장에서는 미세한 불일치가 발생하는 이유입니다. 기존 로봇은 정해진 좌표를 따라 움직일 뿐이어서, 용접 위치를 찾지 못하거나 각도·간격이 어긋나는 문제가 빈번했습니다.
생산성 30% ↑, 공정 기간 30%↓
설계–현장 간 오차를 줄이기 위한 HD현대의 핵심 기술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과 ‘AI 비전 인식’입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의 조선소를 가상공간에 그대로 복제해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입니다. 설비의 작동, 자재 이동, 인력 투입, 도크별 건조 진척률이 모두 3D 모델로 실시간 반영되고, AI는 그 데이터를 분석해 병목이나 설비 이상을 사전에 감지합니다. 이를 통해 도크별 선박 건조 진척률, 설비 가동률, 인력 투입 현황을 가상 화면에서 즉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설비를 설치하거나 공정 순서를 바꿀 때도 실제 라인을 멈추지 않고 가상으로 검증할 수 있습니다. AI가 설비의 진동·온도 데이터를 학습해 “이 장비는 3일 내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식으로 예측 정비까지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AI 비전 인식은 디지털 트윈이 만든 데이터를 실제 현장에서 구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휴머노이드에 부착된 비전 카메라가 용접 부위를 스캔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각도·속도·전류를 자동 조정합니다. 설계 모델과 실제 환경을 실시간으로 비교·보정하는 식입니다. 이를 통해 HD현대는 생산성은 30% 향상되고 공정 기간은 30% 단축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디지털 트윈을 활용한 가상 조선소 ‘트윈포스(TWIN FOS)’를 통해 조선소 공정 상황을 실시간으로 살펴보고 있다. (사진=HD현대)
휴머노이드가 오차 보정…정밀도↑
HD현대는 지난 5월 휴머노이드 전문 기업 페르소나AI, 로봇 엔지니어링사 바질컴퍼니와 함께 ‘조선용 휴머노이드 용접 로봇’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고정된 산업용 로봇과 달리 걸을 수 있고, 관절을 자유롭게 움직여 곡면이나 비정형 구조에서도 정밀 용접이 가능합니다. AI 비전 카메라가 용접 부위를 인식해 각도와 속도를 자동 조정하며, 숙련 용접공의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 수준의 품질을 구현합니다.
HD현대는 휴머노이드가 단순히 ‘인력을 대체하는 로봇’이 아니라, AI의 판단을 물리적으로 실행하고 그 결과를 다시 데이터로 되돌려주는 ‘자율운영 시스템의 말단 노드’로 기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앙 AI가 지시를 내리면 휴머노이드가 현장의 오차를 스스로 보정하며 작업을 수행하고, 이 과정에서 수집된 데이터가 다시 AI 학습에 반영돼 조선소 전체의 정밀도가 향상되는 순환 구조를 이루는 셈입니다.
HD현대 측은 “1990년대부터 일부 도입된 패널라인 자동 용접 로봇이 현재 철판을 이어붙이거나 소블록을 만드는 수준의 내업 공정 위주로 투입되고 있다”며 “휴머노이드가 도입 및 고도화된다면 공장 외부 작업인 의장, 도장, 마감은 물론 고위험 작업 등 기존 로봇 적용에 제약이 있던 공정도 자동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선종마다 다른 용접 부위와 길이 등을 파악하고 용접할 수 있어 기술적으로 상당히 진일보할 것이라는 평가입니다.
특히 HD현대의 AI·머신러닝의 경우, 특화된 학습을 통해 최적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조선소의 경우 선박 종류, 작업 환경, 계절, 인력 숙련도 등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데이터가 균질하지 않고 편향이 생기기 쉬운데, 동일한 AI 모델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별, 작업별로 각각의 모델을 따로 만들어 적용한 후 통합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HD한국조선해양이 개발한 조선업 맞춤형 AI 번역 서비스 'AI Agent'의 구동 모습. (사진=HD현대)
현재 2억건 이상의 조선·해양 데이터를 보유한 HD현대는 네이버의 초거대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X’와 결합해 AI가 조선소의 데이터를 학습·번역·분석하도록 하는 업무 혁신도 추진 중입니다. 현장에서는 ‘AI Agent’가 조선 전문 용어와 방언을 실시간 번역하며, 향후 안전·품질·교육·생활 전반을 지원하는 통합 솔루션으로 확장될 예정입니다. HD현대 측은 “해당 프로그램을 이용해 일일 150~200여건 정도 작업 지시가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이용률이 증가하면 HD현대 조선 분야 외에 계열사나 해외 조선소 등에 확대 적용도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